아침을 먹으러 가면 주스, 빵과 잼, 계란 등이 있는데, 음식이 모자라거나 뒷정리가 제대로 안되면 카탈리나가 와서 치워 준다. 조식 시간이 지나여행객들이 놀러 나가면 방과 복도,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그녀의 손에는 행주를 비롯해 손걸레나 막대걸레가 돌아가며들려있었으며, 얼굴은피로에 절어있고 입꼬리는 축 쳐져 있었다.
지난주,카탈리나가 여느 때처럼 내가 묵는 2층의 4인실에 청소를 왔다.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기에 무슨 일 있었냐며 말을 걸었다. 마음이 너무 힘든 날이라고, 일하기 싫다고 하며 그녀는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물건 하나가 없어지면 자기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떠나고 없는 여행객의 음식이 여전히 냉장고에 있으면 그것들을 챙겨 집으로 가져갔는데, 이를 누군가 문제 삼은 것도 이야기했다. 눈물을 훔치며 힘들어하는 카탈리나의 이야기를 나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날 이후로, 카탈리나는 가끔 내 손에 초콜릿 같은 것을 쥐어주었는데, 고맙다며 받긴 했지만 이것도 누군가 남기고 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카탈리나는 나를 마주칠 때마다 우리 집에 놀러 와,라고 했다. 아마 그도 가족들에게 나를 자랑하고 싶은 거겠지? 여태 만난 콜롬비안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이 그의 자존감을 높여줄 거라는 어쭙잖은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지나와 생각해보니 오지랖도 그런 오지랖이 없다)
그리하여, 카탈리나가 쉬는 날인 일요일이 되었다. 마침 이번 일요일에는 카탈리나의 두 아들이 각자의 아버지 집에 가는 날이라고 한다. 카탈리나의 동네가 멀다고 해서, 아예 1박을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카탈리나의 동네는 지상으로 달리는 전철을 30분 타고 도심 외곽으로 간 다음, 거기서 마을버스를 타고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다. 말이 이렇지 서울이나 부산에도 이런 동네는 많으니까, 이때는 이곳이 우범지대 일라는 예상을 못했다.
전철에서 내렸을 때 역 앞에 작은 그가 마중 나와 있었다. 버스에서부터 그는 주절주절 자기와 가족 소개를 했다. 서른여섯이고, 아버지가 다른 자신의 두 아이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카탈리나는 늘 위험한 지역에 살았는지, 이상한 버릇이 몸에 배어 있었다. 잔돈을 받으면 빛의 속도로 구겨서 작은 주먹 안에 꼭 쥐는 것이다. 또, 내가 휴대폰을 꺼내려 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가방에 얼른 집어넣고 지퍼를 잠그라고 따끔히 주의를 주었다. 어찌나 혼쭐이 났는지 그게 너무 신경에 거슬렸다. 아니 이 정도까지 해야 해? 그녀는 5분에 한 번씩, 이미 잠겨있는 내 가방 지퍼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겼다.
버스에서 내려서 조금 걷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다. 여행자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현지인들의 동네다.
카탈리나의 늙은 아버지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작고 주름진 그의 얼굴은 아주 선한 인상을 풍겼다. 셋이 경사진 골목을 이리 내려갔다 저리 올라갔다 하며 중앙교회가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네모난광장 주변으로 늘어선 먹자골목과 바에서 경쟁적으로 크게 틀어놓은 노랫소리가, 여기가 콜롬비아라고 말해 준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삼삼오오 모여있는 주민들과 엉겨 붙은 연인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콩고물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개들로 가득하다. 유일한 아시아인인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익숙하다.
우리는 간단히 길거리에서 파는 꼬치구이로 저녁을 먹었는데, 꼬치구이 사진을 찍다가 카탈리나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광장 계단에 앉아 꼬치구이를 먹는데, 카탈리나가 아버지에게 나의 부주의를 일러서 기분이 언짢았다. 그녀는 내가 비싼 휴대폰을 꺼내고, 사람들이 내 휴대폰을 쳐다본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중에 교수가 길에서 휴대폰 소매치기를 당한 이야기를 해서 경각심은 날로 커졌다.)
대충 식사를 때우고 나서, 살사가 나오는 바 bar의 야외테이블에 앉았다. 맥주를 시키고 앉아있는데, 옆 테이블의 남자셋이 계속 말을 건다. 카탈리나가 그들에게 매우 관심을 보였다. 호스텔에선 본 적 없는 화사한 미소.
[카탈리나, 외로워?]
내가 묻자 카탈리나는 몹시 그렇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필요해. 그런데 난 너무 시간이 없어. 먼 거리로 출퇴근하고, 하루 종일 몸 써서 일하고,집에 와서 뻗어서 자기 바쁘고...]
솔직히 말하자면, 며칠간 옆에서 지켜본 바 카탈리나는 주위를 맴돌며 징징거리는스타일이다. 외모는 귀엽지만 늘 울상이라서 애인은 고사하고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여기 온 목적대로 그녀를 밀어주기로 한다. 뭐 옆 테이블의 남자들과 합석하는 건 일도 아니라서, 눈을 마주치길 기다렸다가 건배 제안을 했다. 건배를 한 번 하자 그들이 잔을 채워주러 왔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탈리나가 그중 한 명과 살사를 추러 나갔다. 곡이 끝나자 그녀는 신나 하며 적극적으로 테이블을 붙였다. 나는 관심이 없어서 혼자 홀에서 춤을 추고 놀았다. 카탈리나의 아버지인 오스카가합석한 남성들이 그녀에게 술을 권할 때마다 자제시켜 주었다. 나는 가끔 오스카 아저씨와는 춤을 췄다. 그는 아주 매너 있고 위트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여자 친구가 23살이라는 건 쇼킹이다. 여기선 커플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게 흔한 일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까지?
새벽 3시쯤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오는데, 날이 선 카탈리나가 신경질을 부린다. 아까 합석한 남자 하나가 무척 마음에 들어 적극적으로 대했는데, 그 이와 수가 틀어진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카탈리나네 집은 막다른 골목의 3층이었는데, 골목 초입에 젊은 남녀가 10명쯤 모여 소소히 놀고 있었다. 쟤들이랑 놀래? 했더니 싫단다. 대신 자기 집에서 저들보다 더 크게 음악을 틀겠다며, 집에 도착하자마자 스피커가 8개 달린 스테레오를 테라스로 꺼내더니 음악을 빵빵하게 틀었다.
쿵.쿵.쿵.쿵. 비트가 벽돌벽을 타고 울린다
... 새벽 3시에 또 이러기야?
Monday, November 30, 2015
카탈리나네서 늦잠을 늘어지게 잤다. 오늘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다. 오스카 아저씨는 모닝커피를 내주고, 낡은 응원복을 꺼내 와 선물로 주셨다. 오!
그리고 갑자기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하더니 그 아래 조립된 메모리를 꺼냈다. "아비가일 네가 콜롬비아 음악을 아주 좋아하니까, 이거 선물로 줄게" 라며 8기가 메모리를 통째로 주시는 게 아닌가! 나는 작은 칩을 내 핸드폰에 꽂아음악을 옮기고 칩을 다시 돌려드렸다. 똑똑하다고 엄청 좋아하신다. 귀여우셔라. 오늘부터 가사 외워서 따라 불러야겠다.
카탈리나가 아주 늘어지게 늦잠을 잔 덕에, 오스카 아저씨와 긴 아침식사를 했다. 아저씨는 자기 큰 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가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을 때, 어제 갔던 중앙교회 앞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그녀를 쏜 것은 그녀의 남자 친구이자 뱃속 아이의 아버지였다. 그 남자는 질투가 아주 많았고,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인지 의심하며 매일같이 말다툼을 했단다. 어느 날 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딸을 쏘았다. 우발적인 사고였다. 중앙광장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경찰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와 아이를 살려낼 수 없었다. 피가 많이 흘렀다. 근처에 있다 소식을 들은 아저씨가 딸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이 달동네의 병원은 그녀를 살려 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오스카는 딸의 사진을 가져와 보여주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아주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
당시에는 총기사건이 정말 많았다고 한다. 어쩐지 작고 어린 카탈리나의 충격이 느껴졌다. 이 이야기가 사람을 무서워하고 감정적인 카탈리나의 성격을 설명해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