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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l 05. 2022

파타고니아, 남의 집에 체크인하다

나이트 다이빙 @ 푸에르토 바라스

푸에르토 바라스에 간다고 했을 때, 콜롬비아 타강가의 다이빙 스쿨에서 세바스티앙이란 다이버를 소개해줬다. 다이빙을 하려면 여기 연락하라면서.


그에게 연락을 하니 오전에 호수 모래밭 왼쪽으로 오면 된단다. 다이버 몇 명이 관광객을 모객 중이었다. 스쿠버 다이빙에 관한 사진을 테이블에 올려 두고, 한 켠에는 배너와 슈트를 진열해 두었다. 밤에 조개가 피어나서 너무 예쁘다며, 야간 다이빙을 추천해주었다. 그중에는 굉장히 쿨해 보이는 키가 크고 예쁘고, 벙거지 머리를 한 유럽 여자가 있었다.  

친구가 ‘나는 내일 다이빙에 갈 거야, 같이 갈래? '라고 제안했고, 나는 그에게 홀라당 반해 다이빙 날짜를 예약하고 돌아왔다. 한다고 하긴 했는데 걱정이네. 야간 다이빙이고, 배를 타고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해변에서부터 산소통을 매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그건 못할 것 같은데,라고 하니 강사에게 이야기해서 도와준다고 한다. 밤 다이빙을 하는 다이빙스팟까지 2시간이 걸리니, 숙소에서 4시쯤 픽업을 해준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싸고 체크아웃을 했다. 푸에르토 바라스에는 며칠 더 묵을 생각이지만, 숙소 매니저의 후진 농담을 이제 피하고 싶고, 남미 여행의 묘미라는 카우치서핑(빈 방에 여행객을 재워준다)도 어쩐지 궁금했다.


첫날부터 하루에 네다섯 번씩 마주치며 대화한 액세서리 가게 주인, 프랑코 & 마리아 부부의 추천을 받아, 그의 동네 친구 크리스티앙이 방 하나를 무료로 빌려준다고 한다. 거기서 좀 지내보지 뭐.


-오늘 체크아웃인데, 지난번에 말한 그 친구네서 정말 신세 져도 되는 거야?

지나가는 말이었는지 진심인지 확인했더니, 프랑코는 정말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

나이트 다이빙이 끝나면 10시쯤 될 것 같다고 하니, 가방을 두고 가면 크리스티앙에게 전화를 해 두겠다고 한다.

-부탁할게. 고마워!

-조심히 다녀와!


나이트 다이빙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콜롬비아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그리고 콜롬비아 바다가 얼마나 예쁘고 따뜻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다이빙이었다.

밤 다이빙은 정말이지 이가 딱딱 떨리게 춥고, 앞이 안 보여 무섭고 (암흑 속을 전등 빛으로 헤집고 다니는 기분), 안경은 뭐가 문제인지 계속 뿌옇다. 숨이 턱턱 막히고 불안했다. 시야 확보도 안되는데 안경까지 말썽이니 내가 계속 물 위로 올라가자고 보챘고, 나를 마크하던 강사는 결국 짜증을 냈다.


쿨한 독일 여자는 밤에 분홍빛으로 활짝 핀다는 바다 꽃들을 찍겠다고 온 사진사와 짝을 이루어 몇 미터를 먼저 나갔는데, 우리가 하도 뒤쳐지자 그 팀도 결국 우리 쪽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내가 도저히 더 못하겠다고 하자, 사진사가 보탰다. “날이 아닌 것 같아, 너무 안 보여”

예정된 시간의 1/3도 채 못 채웠지만, 이미 나는 저 팀을 위해 좀 더 버틴 것이었다. 


뭍으로 헤엄쳐가는 데도 나는 너무 뒤처졌다. 동동 떠서 오리발을 휘적이며 하늘을 보는데 내가 있는 곳이 남극과 가까워선가, 웬 별이 이렇게 많은지. 아까 바다에서 그렇게 찾던 플랑크톤은 다 하늘에 있었구나. 가만히 앉아서 하늘만 보면 되었던 것을. 별을 보고 있으니 콜롬비아가 더 그립다. 옆에 든든하게 있어주던 섹시한 콜롬비안 스쿠버강사는 참 친절했는데...


뭍과 가까워질수록 산소통은 무거워진다. 등에 매기는커녕 들 수조차 없어서 그 옆에 서있으니 강사가 그거 두고 걸어 나오라고 신호했다. 오리발을 벗어서 들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신경질적으로 걸어오더니 내 산소통을 턱 들쳐 매고 차로 휙 휙 걸어갔다. 서럽지만, 짐짝이 된 기분인 나는 고맙다는 말밖엔 할 말이 없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뒷자리에 쪼그라 있던 것도 잠시, 따뜻한 히터가 나오자 몸이 노곤해져 마시멜로처럼 녹았다.  아예 곯아떨어져 있다가 깨어나니 새벽 1시가 지나 있었다. 헉. 어떡하지… 이렇게 늦게 돌아온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


다이버 강사는 나를 오늘 체크아웃한 숙소에 내려주었다. 고요한 거리, 깜깜한 숙소를 지나 프랑코의 가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프랑코의 노란색 가게에... 불이 켜져 있네. 커다란 창문으로 프랑코, 마리아, 크리스티앙이 옹기종기 모여 마떼를 나눠 마시고 있는 게 보였다. 따뜻한 감정이 솟아난다.


내가 들어가자 프랑코의 아내인 마리아가 수고했다며 안아주었다. 나에게 레몬과 꿀을 넣은 차를 내어 준다. 뭘 보고 왔냐기에 추웠던 호수, 깜깜한 시야, 관리가 안된 고글, 설명했던 조개밭이 어디에도 없던 것 등등을 이야기했다.

크리스티앙이 왜 다이빙을 갔느냐고, 지금은 다이빙하기 좋은 기간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엄청나게 추워도, 한겨울이 되어야 물속이 예뻐진다면서. (그는 해양생물학 연구원이다)

- 여름바다도 이렇게 추운데? 내가 사진에 속았구나!

나는 눈먼 관광객 호구였구나... 또 한 번 우울해졌다. 이제 쿨한 여성이 있다고 무작정 따라가는 일은 하지 말자...


이제 가볼까, 집에,

마리아와 프랑코와 볼인사를 나누고, 고맙다, 또 고맙다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이 친구들이 기다려주지 않았으면 노숙해야 했을까? 아무리 파타고니아의 밤이 짧다지만 정말 춥고 길었을 거야.


피곤하지만 쫄래쫄래 열심히 따라갔다. 크리스티앙이 가방을 들어주고 또 한 번 다이버스쿨에 분노하여 쫑알쫑알거린다. 그를 따라 정원이 예쁜 집, 알록달록 한 집, 을 거쳐

허름한 정원이 딸린 어둡고 칙칙한 통나무 집에 도착하자, 잠이 다 달아났다.


‘아 그 개자식이 있더라도 호스텔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과 함께 안전 레이다를 풀가동한다.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와 흔들의자가 전부인 좁은 거실 뒤로 식탁이 놓인 넓은 거실이 있다. 소파 위 통나무 벽에는 새 그림이 쭉 걸려있고, 반대편 벽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한 그림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뒤로, 한 명이 겨우 서서 조리할 듯한 좁은 부엌이 보인다.

통나무집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났다.


허름하고 칙칙한 분위기는, 불을 켜자 조금 누그러들었다. 깨끗하게 관리된 집이었다. 크리스티앙은 좁은 나무계단의 작은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계단 하나를 밟을 때마다 찌걱 찌걱 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방을 가득 채운 더블침대와 빨간색 시트 위로 까만 고양이가 앉아 있었다. 안전 레이다의 막대기가 일순 사라지는 느낌


-설명은 내일 해줄게. 일단 자!


크리스티앙이 문을 닫아준다. 얼마 만에 혼자 쓰는 방인지. 보스락거리는 포근한 오리털 이불, 고로롱거리는 검은 고양이. 아주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다음날, 일 층으로 내려오니 먼지털이 같은 강아지가 정원을 헤집고 있었다.

떠돌이 강아지인가 했더니, 크리스티앙이 소개해줬다.


“얘 이름은 '치끼띠따'야” (작고 귀여운 꼬마는 뜻)

주인이 있는 개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 누더기는 애교가 많다. 크리스티앙은 능청스럽게 “드레드 스타일 (레게머리)”이라며 개가 히피라서 그렇다고 한다.


고양이는 이름이 뭐야?라고 물었더니,

"아, 그 고양이는 내 고양이 아닌데?"란다. 어젯밤 나는 길고양이와 잔 것이다. 하하하.


<사진 1> 프랑코와 마리아는 액세서리를 직접 만들며 가게를 운영한다. 특기는 은 세공.

<사진 2 왼> 크리스티앙의 강아지, 치키띠따  

<사진 2 오> 목줄을 한 것을 보아 분명 주인이 있을 텐데, 고양이 두세 마리가 같이 와서 밥 먹고 물 마시고 잠을 잔다. 공짜 손님이 많은 크리스티앙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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