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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마님 Jun 22. 2022

니나와 골목 친구들

콜롬비아는 사랑이야. 바비큐 파티에 초대받다

메데진에서는 호스텔에서 생활한다. 1인방부터 8인실 방까지 있는데 나는 2층의 4인실을 선택했다. 34000페소 (만 2천 원)에 아침밥을 준다. 점심 저녁은 사 먹거나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장을 봐서 만들어 먹으면 된다. 공유 주방과 거실이 있었고 주말마다 액티비티가 있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으레 그렇듯 북미나 유럽인이었다. 일요일에 도착해서 동네를 어슬렁 구경했는데 잘 사는 동네라 음식이 꽤 비쌌다. 내일 저녁엔 호스텔에서 연계해 준 댄스학원에서 살사를 배워보기로 했다. 15000페소 (오천 원)에 초급 수업이 있다고.


스페인어 수업을 듣는 EAFIT은 콜롬비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립대학교 중 하나로, 캠퍼스가 넓고 고급스러웠다.  반배정 인터뷰에서 턱걸이로 레벨 2를 받았다. 레벨 1을 받지 않으려고 자기소개를 달달 외워갔는데, 같은 왕초급이어도 레벨 2(의미는 모르지만 읽을 수 있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숫자를 세는 정도)를 줘서 감개무량하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이라 인터뷰 후 바로 수업료를 지불하고 4시간 수업을 듣고 왔다.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이 아주 신식이어서, 편한 의자에 앉아 조용히 숙제도 하고, 어린이책도 빌렸다.


학교와 숙소를 오갈 때는 버스를 타는데, 버스비를 받는 젊은 안내원이 있을 때도 있고 기사가 직접 돈을 받을 때도 있다. 버스가 작고 정류장간 거리도 짧아서 그런지, 안내원들이 버스 옆문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료한 업무에 재미더하는 모습이었달까. 기사는 딱히 잔소리가 없었다.


수업 후엔 본격적으로 동네를 어슬렁거렸다.  등록한 수업이 2주라서, 앞으로 이곳에 2-3주는 있을 테니 동네 주민들과 친해져 볼까 작정하고 들이대고 있다. 여행경력이 늘자 가장 만만한 곳을 잘 찾아낸다. 단연 동네슈퍼와 카페. 같은 슈퍼와 같은 카페에 매일 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마침 호스텔 근처에는 입구 출구가 따로 없이 단칸방뿐인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빡빡하게 진열된 매대 겸 계산대가 있고, 그 옆으로 튀김용 바나나, 과일과 빵 같은 것이 넓은 칸에 한 두 종류씩 채워져 있다. 가게 중앙에는 늙은 대형견이 눈을 끔뻑거리며 바깥구경을 한다.

물을 사면서 짧은 대화를 시도하고, 과일 칸 사진을 찍어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 사진을 그림으로 그리고, 사전으로 과일 이름을 찾아보았다. 


다음 날, 그림을 들고 슈퍼로 갔다. 주인장인 니나 Nina는 내 그림을 보고 활짝 웃으며 아주 좋아하더니, 그림 위에 단어를 적어 주고, 친절히 발음 코칭까지 해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아주머니네 가게에 놀러 갔다. 살 것이 없어도 그냥 인사를 하러 갔다. 우리는 긴 대화는 하지 못하지만, 맥주를 나눠 마실 수는 있었다. 니나의 반려견과 함께 앉아, 가게에 오는 동네 사람들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며 한마디라도 더 뱉고, 500마디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가끔 니나에게 놀러 온 동네 아저씨들이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니나는 평생 이 골목에 살아서 동네 친구가 많았다. 동네 입구에 큰 마트가 있기 때문에, 동네 친구들은 뭐가 필요하다기보다 니나를 보러 오는 것 같았다. 니나의 50대 동네 친구들은 시간이 많았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를 자주 자기네 가게로 초대하거나, 내 학교 숙제를 같이 붙들고 해 주었다.





2015년 11월 18일 금요일

콜롬 비아노의 금요일 밤- 가족, 친구, 술과 춤. 그들은 금, 토를 주말이라고 불렀다. 일요일엔 일을 하지 않아 대부분의 가게가 닫혀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니나의 슈퍼가는 게 일과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 인사를 가면 간식을 주신다. 니나의 가게 맞은편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친구 고르도 Gordo가 와서 잠깐 수다를 떨더니, 바비큐 해 먹을 건데, 이따가 나오란다. 옆에 있던 나도 함께 초대받았다. (고르도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뚱땡아, 라는 뜻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그를 고르도라고 불렀다.)


카페에서 숙제를 끼적거리다가 갤러리로 갔을 때, 길 한복판에 바비큐 그릴을 떡하니 꺼내놓고 고기를 구울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는 아저씨네 뒷마당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웬 걸. 갤러리 밖으로 대형 앰프를 들고 나와 거리에 테이블을 놓고 세팅을 한다. 누가 보면 행사장인가 싶을 정도로 비트가 심장을 울리도록 음악을 틀었다. 그들은 덩실덩실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갤러리 안에서는 안주거리 준비가 한창이고, 니나는 가게에서 간이의자를 꺼내 이쪽으로 옮기고 있다. 간이 테이블 위로 안주와 술과 라임이 올라온다.


두툼한 고기가 구워지고, 콜롬비아 증류주인 '아구아디엔테'가 오가고, 일어나서 춤을 추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밤 12시가 되었을 즈음.


 방금 전까지 머리를 묶고 잠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아저씨의 큰 딸이 생머리에 진한 화장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자정이 넘도록 집 앞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는 아빠 까를로스랑 뽀뽀를 쫙~ 하더니 자기는 이제 클럽에 간단다.

까를로스 부부, 니나, 갤러리 주인 내외, 그리고 갤러리 주인의 사촌인 젊은 까를로스. 이렇게 개방적인 프라이빗 파티(?)라니? 

니나에게 살사도 배웠다. 여성은 스텝만 익히면 남성 파트너의 리드에 따라 금방 출 수 있다.


아무도 춤과 술을 거절하는 법이 없다.

[porque no?(‘왜 아니겠어?’)]

마시자 하면 [okay, salut(쨘)!]

우리들 모두는 돌아가면서 살사를 췄다. 니나는 이런 나를 보며 아주 뿌듯해하며 외친다. [ 왼쪽, 오른쪽, 돌아!]


남자가 3명인데 그중에 까를로스가 셋이다. 젊은 까를로스, 애아빠 까를로스, 그리고 오늘의 호스트인, 갤러리 사장이며 덩치가 가장 큰  Carlos까를로스가 있었다. 그는 Gordo고르도라는 애칭으로 불려서 이름이 헷갈릴 일은 없어 보였다. 니나가 물었다.

[고르도는 한국어로 뭐라고 해?]

[뚱뚱이. 그런데 그렇게 불러도 돼?]

나는 고르도가 기분 나쁠까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모두가 뚱뚱이 발음을 연습하고 있다. 심지어 고르도마저도!


[여기서는 다들 그렇게 불러. 야~~~~뚠뚠아하하하하~~~]

니나는 그때부터 고르도 까를로스를 뚠뚠이라 불렀다!

“뚠뚠! 뚠뚠아! 술이 모자라!”


우리는 테이블 위로 지폐를 모았다. 아저씨들이 차례로 2만페소(약 56000원)를 냈다. 아직 돈 계산이 느린 나는 뇌를 굴리며 환율 계산을 하고 있는데, 니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난! 아비가일 몫까지 내겠어!”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꺼낸 돈을 박력 있게 탕! 내려쳤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니나는 천 페소(약 2800원)를 냈다.


그 이후로도 위스키에 고기에 춤에 2시까지 거뜬히 노시던 오십 대 콜롬비아노들... 나는 2시쯤 호스텔 바로 앞에 있던 갤러리라 바로 인사하고 내방으로 와서 잤다.

아 안전해. 이런 남미라니.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좋잖아?!


(덧. 이곳은 메데진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었음이 곧 밝혀진다)


내가 묵었던 동네


고르도의 냉장고에 한글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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