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지금은 쓰러지거나 황천길(?)로 갈 수 없다는 절박감. 미친 듯이 뒷목과 머리를 주물렀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왔다. (MSG를 첨가하자면 구급차(?)까지 생각했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불과 15분 전 일어났다.
새벽 5시, 눈을 뜰까 말까 망설이다 일어났다. 나흘간의 연휴가 끝나는 날이자 독박육아에서 벗어나는 날이라며 쾌재를 불렀다. 눈은 떠지지 않았지만 해방감과 의무감(등교준비)에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거실공기가 코 안을 파고들었다. 알레르기비염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생체리듬이 균형 잡기도 전에 재채기가 한 템포 빠르게 나왔다.
며칠째 아이들과 동거동락하느라 운동을 미룬 탓일까 뒷목이 뻣뻣하던 터였다. ' 에,에, 에취'하고 재채기하는 순간 뒷목과 머리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재채기하는 나'와 '재채기를 인지하지 못한 신체'가 균형을 잃고 따로 움직였다. 급소를 맞은 것처럼 눈앞이 깜깜해지다 하얘졌다. 예상하지 못한 극강의 통증은 이성을 잃게 만들었다. 꼬리 밟힌 강아지처럼 거실을 길길이 날뛰었다.
(고통이 조금씩 사라진 후 목이 꺾인 채 걸어가는 좀비가 떠올랐다. '좀비가 몸을 뒤트는 건 극심한 근육통 때문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잠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버럭씨(남편)와 잠꼬대하며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소중한 일상을 그리움으로 남길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다. 허튼짓하고 살다가는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하루라는 시간이 절실해졌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과 영화 '버킷리스트'가 떠올랐다. 책과 영화에서 읊어주던 일상의 행복이 절절히 와닿았다.
아이가 8살 때 그린 '우리 가족'
평범한 날은 무한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한하다.간단한 진리도 깨치지 못한 중생이 안타까웠을까.
'1분 1초를 소중하게 여기고 범사에 감사하라.'
재채기는 따끔한 일침을 날리고 사라졌다.
나에게 주어진 날이 숫자로 매겨진다면 나는 과연 무엇이 하고 싶을까.
-가족과 얼굴 보고 대화하며 꼬옥 안아주기.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안부가 뜸했던 고마웠던 사람들과 통화하기. -하늘, 바람, 땅, 풀 냄새 맡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걷기. -맛있는 음식 먹으며 턱이 아프도록 웃기. -가족들에게 오글거려 하지 못했던 말, 편지에 쓰기. -미뤄덨던 해외여행 가기( 아이들과 매년 약속하고 매번 일상에 치여 미루고 있다.)
스티브잡스는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말했다. '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도 이 일을 하겠는가.'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편지를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불현듯 그날이 찾아와도 여유 있게, 도도하게 편지를 '스윽' 내밀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