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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치는 오늘도 헤맨다 # 길치의 비애

카라반에서 아침을

by 진아

나흘간의 긴(아주 기~~ 인) 연휴가 시작됐다. 아이들에게 휴일이란 꿀맛 같은 설렘이나 엄마 입장에선 부담이자 곤욕이다. 기나긴 날들을 무얼 하며 보내야 하나. 고심 끝에 1박 2일 물놀이로 결정했다. 바닷가, 인근 펜션, 수영장 등 폭풍검색을 했다. 눈이 뻑뻑해질 무렵 전광석화처럼 떠오른 단어 '캠핑'. 텐트 치기는 무리고 글램핑으로 알아보자. 1시간 전후 거리에 있는 캠핑지를 검색했다. 바닷가 글램핑은 발 빠른 사람들이 예약을 끝낸 후였다. 그럼 산으로 가볼까. 다행히 카라반 캠핑장에 자리가 있다. 수영장, 모래놀이, 트램펄린이 갖추어진 어린이 맞춤 놀이공간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1박 2일 캠핑을 예고했다. 신난 아이들이 손꼽아가며 출발일을 기다렸다.

적당한 기다림과 설렘은 소소한 기쁨을 준다.


출발전날 짐을 싸고 먹거리를 사두었다. 드디어 아이들의 기대를 가득 싣고 출발했. 남매는 달린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시시콜콜한 질문과 불만을 쏟아냈다. 초행길에 대한 부담과 아이들 재촉까지 더해지자 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엄마, 몇 시 도착 예정이야? 아직 멀었어?"

" 나, 속이 안 좋아. 라디오 좀 꺼줘. 창문 열어도 돼?"


매의 들뜬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최대한 담백하게 응했다.(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랬으나 아이는 왜 인상 쓰고 있냐고 되물었다. 해맑은 눈으로.)

별일 없이 무사히 도착하는가 싶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2분 전'을 앞두고 헤매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방향은 여긴데 아닌가, 이상하다?

입구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싸한 기운이 느껴졌지만 내비게이션의 을 믿고 가본다. 가도 가도 가파른 산길이다. 어라?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큰아이가 짜증을 낸다.


"여기가 아니잖아. 길치엄마 때문에 못살아. 빨리 돌아나가자."


낭떠러지와 우후죽순 자란 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왔다.

캠핑장은 50m 앞에 바로 있었다.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엉뚱한 을 헤매고 있은 셈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했으니 어쨌든 도착이다. 광범위한 공간에 텐트와 카라반이 드문드문 보였다. 어디가 주차장이고 어디가 숙소인가.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개미눈곱만 한 간지각능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혼미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주차하고 있는 앞차를 따라갔다. 미심쩍었지만 일단 주차는 하고 보자 싶었다. 우 주차선에 차를 세웠을 무렵 주인포스를 풍기는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예약확인을 하고는 안내를 해주셨다. 때 맞춰 주인할아버지를 만나서 다행이다. 못 만났다면 남의 텐트에 짐을 풀고 있었을지도.


자갈길을 지나 잔디를 헤치고 드디어 예약한 카라반에 짐을 내렸다.

아이들은 곧장 수영장에 입수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 엄두가 났다. 나는 동화 속 나올법한 아름다운 정원 한복판에 서 있었다. 고상한 자태를 뽐내는 나무 사이사이 고운 꽃들이 즐비했다.

자연이 준비한 깜짝 파티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길고 험난한 여정(고작 1시간)을 갑절로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감격에 젖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다.

새침하게 피어있는 꽃이 좋고 우직하게 서 있는 나무가 좋았다. 힘 있게 펼쳐진 산이 좋고 무심히 걸려있는 구름이 좋았다. ('좋았다'만 읊어대는 은 표현력이 아쉽지만 이 순간 떠오르는 최대한의 찬사다.)

자연이 건넨 수채화는 길치의 설움 잊게 만들었다.


아직 찾지 않은 미지의 길은 두룩하다. 낯설고 새로운 길은 두렵지만 신비로운 자연을 담을 수 있다면 마법 같은 정원을 누빌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시동을 보리라.

마법의 정원에 피어있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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