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산 넘어 산 아니고 '자식' 너머 '자식'

향긋한 포도주가 되기까지

by 진아

브런치를 살피다가 카톡으로 넘어갔다. 책 좀 봐야지, 글 써야지 하던 의지가 유튜브까지 넘보고 있다.

오늘은 비가 예보되어 있다. 비 오는 날은 무엇을 해야 할까. 본격적인 여름 맞이 준비를 해야지.(여름이 온 지 언젠데..) 봄과 여름이 뒤섞인 옷장을 정리하리라.

어수선한 옷장을 대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지저분한 집을 보면 아이들 눈치부터 살피게 된다.


요즘 들어 부쩍 예민한 큰아이가 염려스럽다. 폭력적인 말과 행동이 거슬린다. 목만 가누어도 가슴 벅차던 때가 있었는데. 뚱거리며 한걸음만 떼어도 격하던 때 있었는데. 요즘 이가 무얼 해도 감동이 예전 같지 않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육체적 노동은 느슨해진다. 면 정신적 노동강도는 수록 강(强) 강(强) 강(强). 급격한 상승곡선을 그린다. 한 고개 넘었다고 숨 돌리면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큰아이는 몇 달째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아들 머리카락은 삽살개처럼 눈을 덮은 지 오래고 뒷모습은 덥수룩한 단발이다). 슬리고 화다가 부탁도 해보지만 의지는 결연하다. 독립투사가 따로 없다. 저 의지를 공부에 쏟았으면 지금쯤이면 벌써... 무슨 말을 해도 기승전결 공부로 귀결될까. 꼰대 같은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고지식한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할 때는 언제고.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두 손 모아 기도 , 간절했던 밤들을 잊어버린다. 점수로 아이의 가치를 환산하려 든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면 얼마나 많은 욕심이 깎여야 할까.

아이는 엄마를 성숙시키기 위해 찾아온 성인( 聖人)이다. 풋내 나는 인간을 발효시킨다. 향긋한 포도주가 되려면 갈길이 멀다. 아직 아이 한마디에 40년 시간이 흔들린다. 숙성의 시간은 아득하기만 하다.


지금의 아이만 할 때 데미안을 접했다.

새는 알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헤르만헤세의 글은 구원이었다.

주저앉을 때마다 이 구절을 읊조렸다. 지금은 알을 깨는 중이라고. 더 나은 세계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아프면서 한걸음 나아가고 고뇌하면서 넓어진다. 아이의 거친 변화도 알을 깨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부모라는 정체성을 갖기 전에 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잊지 말자. 변덕이 죽 끓듯 끓고 반항심이 하늘을 찌르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법정스님의 말이 떠오른다. '모난 자갈을 둥글고 매끈한 돌 만드는 건 거친 파도가 아니라 부드러운 강물 손길'.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그리운 날이다. 선인(仙人)의 가르침이 절실한 새벽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