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덩어리는 그녀 몸을 빠르게 장악해 갔다. 말기암 환자의 마지막 코스 뇌졸중까지 찾아왔다. 거동이 어려운 엄마에게 간병인이 필요했다. 엄마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길게도 망설였다. 만사 제치고 엄마 돌봄을 하느냐, 간병인을 두느냐. 머리는 이미 정답을 말하고 있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엄마에 대한 연민과 도덕적 양심 때문에.
" 솔직히 엄마랑 한 공간에 오래 못 있잖아. 기저귀 채울 자신도 없고."
우리가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안고 싶어 했던 엄마지만 손조차 잡지 못했다. 상담선생님이 그랬던가. 엄마와 스킨십이 어려운 건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이라고. 언제부턴가 엄마 몸을 스치지만 해도 움츠러들었다. 그녀가 곁에 다가오기만 해도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돋았다. 곪아버린 상처는 회복되지 않고 덧날대로 덧나버렸다.
우리 손으로 엄마를 보살필수 없다면 남의 손이라도 빌려야 했다. 고심 끝에 간병인을 쓰기로 결정했다.
엄마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을 지켜보는 것도 간병인을 구하는 것도 서툴렀다. 처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깨지고 깨우쳐 갔다.
간병인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고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간병 일이 밥벌이라는 수단 외에 환자와 환자가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도 포함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순진한 나의 믿음을 비웃듯 생명과 돈을 저울질했다.
"간병인은 몇 주 정도 쓰실 건가요?"
"아직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는데. 지금으로선 1주일쯤..."
"에이, 그 정도 가지고 안되는데. 저희도 어느 정도 돈 되는 일을 해야 뭐가 남지. 금액을 조금 더 쳐 주든지, 일주일 더 간병할 수 있게 해 주든지. 아님 못 봐드려요."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위 대화는 실제 대화보다 순화시켜 표현함) 간병인이라는 사람이 시한부 환자를 저울에 올리고 가치를 따지고 매긴다. 내가 눈을 감고 살았나. 세상이 원래 인간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나. 지금까지 살아온 곳은 인간세상이 아니었나. 하긴 다른 사람의 아픔이나 고통 따위가 뭐가 중요하겠나. 당장 눈앞의 이익이 우선이겠지.
세상의 민낯을 접하고 며칠을 끙끙 앓았다.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을 사람에게 데고 치였다.
나의 아픔, 슬픔은 오로지 나의 몫인 셈이다. 타인의 공감을 바라지 말자며 마음을 추슬렀다.언제나 자신의 아픔은 크고 타인의 슬픔은 멀리 있는 법이니까.
물론 병원에서 만난 모든 분이 차갑지만은 않았다.마지막에 만난 간병인 이모는 따뜻한 분이셨다.
" 아이고, 엄마가 나랑 갑장이네. 많이 아파서 어떡하누."
엄마를 동년배라고 반기며 살뜰히 챙기셨다. 엄마기저귀를 채우시다가도 환자와 환자가족이 무안하지 않도록 신경 쓰셨다.
"엄마 피부가 뽀애가지고 너무 곱다."
엄마는 노년을 맞이하지 못했다. 남은 삶을 즐겨야 할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침대에 의지해야 했다. 두 발을 내디뎌 땅을 밟지 못했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급기야 몸조차 가누지 못해 타인에게 자신을 맡겨야 했다. 간병인의 손길이 이생에서 마지막 온기가 되었다.
그분의 따뜻한 보살핌에도 엄마 건강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그 후 우리 집을 잠깐 거쳐 노인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참고로 모든 간병인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경험한 극히 일부의 사람만 이야기한 것입니다. 부디 오해 없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