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기로 했어. 그래서일까. 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말랑한 동화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해.
넌 예정된 시간에 울기도 했고 예고도 없이 울음을 쏟아놓기도 했지.
무슨 슬픔이 저리도 많을까 싶다가도 햇살 아래 까르르 웃음을 쏟아내던 너를 떠올렸어. 구름으로 눈물 닦고 말간얼굴을 웅덩이에 비춰보고 있었지.
지낼만해?
외롭다는 너에게 달을 선물할게. 함께 있지 못해도 너의 곁에 늘 머물 친구란다.
밤이 무섭다는 너를 위해 전등도 준비했어. 하나로 부족할 거야. 너의 마음 곳곳에 노란 전등을 켜두었어. 이제 무섭지 않지?
누군가 나이를 물었어. 입에 담기에 낯선 숫자를 말하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어. 체감하는 나이는 살아온 날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시간은 자라지 않는 마음을 두고 자꾸만 달아나.
중국에 전족(纏足)이라는풍습이 있었대. 어린 여자아이의 발가락을 꺾어 발을 천으로 꽁꽁 동매여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막았다고 해. '무언가로 휘감은 발'이란 뜻인데 자라지 못한 채 묶여있는 내 마음 같았지. 기형의 모습으로 성장이 멈춘 채 말이야. 혹시 작은 공간에 마음을 가두고 꽁꽁 싸매고 있는 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세상에 갉아먹혀 손톱만 해진 초승달도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었듯이 나도 동그라미를 그릴줄 아는 아이는 아니었을까.
아이들과 '달가루'라는 동화책을 보았어. 토끼는 매일 달을 캐고 달가루를 모아. 애써 모은 달가루를 다시 줄어든 달의 표면에 씨앗 뿌리듯 뿌려. 그러면 식물이 자라듯 달은 반달이 되었다가 탐스런 보름달로 자라나. 어차피 가만히 두면 보름달이 될 텐데 왜 캐고 심고 반복할까 궁금했어.
토끼가 종일 캐낸 달가루를 훔쳐먹는 곰벌레도 등장해. 두려움의 대상이자 적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지. 덩치 큰 괴물이던 곰벌레가 "먹을 거면 너도 같이 일해"라는 토끼 말에 마음을 고쳐먹어. 우락부락하던 곰벌레가 세상에서 가장 듬직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토끼와 일상을 함께 하지. 함께 달을 캐고 모은 달가루를 다시 뿌리고.
마음이 손톱처럼 뾰족해질 때도 있고 반달만 한 배려에도인색한 날도 있어. 어떤 날은 보름달보다 둥근 마음을 내밀기도 해.
우리가 저 토끼처럼 반복된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유는 손톱 같던 날을 견디고 반달 같은 희망을 품으면서 보름달 되는 날을 꿈꾸기 위해서가 아닐까.
모든 관계는 단순하지 않아. 상처받은 날에는 차라리 혼자가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어. 곰벌레처럼 적군으로 만났다가 아군으로 품기도 하고 아군이라 믿었는데 적군으로 멀어지는 관계도 이어가지.
어제는 나의 시간을 가볍게 말하는 너에게 서운했었어. 너의 말은 날카로운 손톱이 되어 반달 같은 내 가슴을 찔러댔지. 자고 나니 너의 말이 조금 뭉툭해졌어. 다시 보름달로 차오를 우리를 알기에 이렇게 글을 쓴단다.
단조로운 듯해도 반복된 일상이 있기에 평온한 오늘이 주어진건 아닐까. 저 토끼처럼 말이야. 우리 삶은 닮은 듯해도 돋보기로 들여다보면 수십 수만 가지의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을 거야. 지금도 밤하늘 별처럼꿈꾸며 살아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