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기분'을 읽고
공책을 열면 어젯밤 덮어두었던 문장들이 깨어날 겁니다. 오늘의 문장을 기다리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더듬더듬 다음 문장을 써나가겠지요. 문장과 문장 사이를 견디며, 나아갈 겁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고, 하다 보면 그 속엔 시가 그득해서, 당신은 시를 안 써도 시에 둘러싸이게 될 겁니다.
에세이를 쓸 때 '어떻게 보일까'를 지나치게 염두에 두면 망한다. 수영선수가 자신의 영법이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며 대회에 참가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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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해야 한다. 축구 선수가 공을 몰고 가 슛을 하듯이. 단순하게. 밖을 생각하면 솔직해질 수 없다.
글쓰기에 몰입해 있을 때는 꿈에서도 글을 쓴다. 글을 쓰다 잠들었는데 꿈에서도 글을 쓰다니! 깨어나면 무얼 하겠는가? 맞다. 책상에 앉아서 (꿈에서) 쓰던걸 이어 쓴다. 이런 황홀한 순간이 자주 오면 좋겠지만 드물게 온다. 물론 과잉노동으로 볼 수 있다.
믿어야 할 건 오직 몸이다. 마음도 인생도 오늘이나 내일도, 몸이 가지고 있다. 부디 날마다 책상에서 몸으로 연습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몇 권의 책을 내든, 종이 위에서 뛰고 종이 위에서 넘어지고 종이 위에서 자라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함박눈이 소리의 최대치를 데려오며 내리는 걸 믿는 사람이다. 쓸 수 없는 장면을 여전히 많이 가진 사람이다. 쓰려면 강해져야 한다. 나무 오백 그루를 껴안을 수 있을 만큼, 힘이 필요하다.
예술가는 적어도 두 번은 태어나야 해. (요제프 같은 시인은 일곱 번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맨 처음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면 두 번째는 태어나(려)는 자기 안의 태동을 느끼고 견디면서 스스로를 낳아야 해! 물론 두 번째가 훨씬 어렵겠지. 스스로가 낳는 자이면서 태어나는 자이니까. 기억해 네가 너를 낳아야 해. 예술가는 스스로가 어머니이자 자식이야.
시인이 되고 싶다면, 그냥 쓰세요. 매일 '시를 위해서 시를' 쓰세요. 미치는 것과 미치고 싶은 것은 다릅니다. 전혀 다르죠. 미쳐서 사랑하세요. 순진하게 달려드세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당신의 빛을 믿으세요. 오직 세상을 의심하세요. 시에서 빗나가있는 시간들을 의심하세요.
당신.
한 번은 순진해져야 해요. 백치처럼 순진해져야 해요. 기댈 데가 시밖에 없는 사람처럼요.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어떤 것도 막지 마세요.
생각은 종이 위에서 하세요.
감정이 과하다 싶어도 겁내지 마세요.
물기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와요. 온다니까요.
당신에게서 태어날 아름다운 시들을 기다릴게요.
시는 뒤뜰이나 구석에서 나오는 목소리여야 하고, 자연스레 빛나야 한다. 연필은 태어나는 시가 지닌 열기, 핏기, 비린내, 약간의 뭉그러짐, 취약함, 그리고 이 모든 불완전성에 둘러싸인 '숨은 비범함'까지 온전히 받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