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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n 30. 2024

'박연준 나라' 탐험기

'쓰는 기분'을 읽고

그녀가 줄을 탄다. 매서운 펜촉을 쥐고 허공 위를 날듯 거다. 바람을 고 구름을 넘나 든다. 나부끼는 옷자락에서 시가 흘러내린다. 애쓰지 않아도 언어가 되고 글이 되고 시가 된다.


공책을 열면 어젯밤 덮어두었던 문장들이 깨어날 겁니다. 오늘의 문장을 기다리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은 더듬더듬 다음 문장을 써나가겠지요. 문장과 문장 사이를 견디며, 나아갈 겁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자꾸 하게 되고, 하다 보면 그 속엔 시가 그득해서, 당신은 시를 안 써도 시에 둘러싸이게 될 겁니다.


지금 여기는 '박연준' 나라. 그녀만이, 그녀의, 그녀에 의한 시어(詩語)가 나부낀다. 시인이 쓰는 신생언어.  일상언어가 시(詩)라면... 상상만으로 심장이 뛴다.


에세이를 쓸 때 '어떻게 보일까'를 지나치게 염두에 두면 망한다. 수영선수가 자신의 영법이 어떻게 보일까 신경 쓰며 대회에 참가하는 것과 같다.
...
그냥 해야 한다. 축구 선수가 공을 몰고 가 슛을 하듯이. 단순하게. 밖을 생각하면 솔직해질 수 없다.


 '쓰는 기분.' 산문집이라고 분명 적혀있는데 페이지마다 시가 넘친다. 넘실넘실 넘실대다가 견디지 못한 언어가 종이 밖을 뛰쳐나온다.  시가 흘러내린다. 어떻게 하면 언어가 시가 되고 시가 전부가 될까. 경이와 존경심으로 눈이 멀 것 같다.


글쓰기에 몰입해 있을 때는 꿈에서도 글을 쓴다. 글을 쓰다 잠들었는데 꿈에서도 글을 쓰다니! 깨어나면 무얼 하겠는가? 맞다. 책상에 앉아서 (꿈에서) 쓰던걸 이어 쓴다. 이런 황홀한 순간이 자주 오면 좋겠지만 드물게 온다. 물론 과잉노동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몽롱한 상태에서  언어들이 부유했다. 눈을 감아도 활자들이 눈앞을 빙빙 돌았다. 꿈과 현실 경계를 헤매다 결국 펜을 그러잡던 날이 있었다. 기묘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녀에 의해 묘한 일은 황홀한 순간으로 정의됐다.


믿어야 할 건 오직 몸이다. 마음도 인생도 오늘이나 내일도, 몸이 가지고 있다. 부디 날마다 책상에서 몸으로 연습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몇 권의 책을 내든, 종이 위에서 뛰고 종이 위에서 넘어지고 종이 위에서 자라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는 함박눈이 소리의 최대치를 데려오며 내리는 걸 믿는 사람이다. 쓸 수 없는 장면을 여전히 많이 가진 사람이다. 쓰려면 강해져야 한다. 나무 오백 그루를 껴안을 수 있을 만큼, 힘이 필요하다.


열일곱 소녀가 되어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글을 읽고 가슴 뛰는 일이 얼마만인가. 시인의 눈은 다른가. 그녀의 시선이 머물면  빛이 나고 생기가 돈다. 


예술가는 적어도 두 번은 태어나야 해. (요제프 같은 시인은 일곱 번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지만!) 맨 처음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면 두 번째는 태어나(려)는 자기 안의 태동을 느끼고 견디면서 스스로를 낳아야 해! 물론 두 번째가 훨씬 어렵겠지. 스스로가 낳는 자이면서 태어나는 자이니까. 기억해 네가 너를 낳아야 해. 예술가는 스스로가 어머니이자 자식이야.

시인이 되고 싶다면, 그냥 쓰세요. 매일 '시를 위해서 시를' 쓰세요. 미치는 것과 미치고 싶은 것은 다릅니다. 전혀 다르죠. 미쳐서 사랑하세요. 순진하게 달려드세요. 그게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당신의 빛을 믿으세요. 오직 세상을 의심하세요. 시에서 빗나가있는 시간들을 의심하세요.



 박연준어()를 알게 되었. 신생언어는 찰흙으로 창조물을 빚듯 세상의 언어를 빚어냈다. 박연준이라는 필터를 치면 시어(詩語)로 피어났다. 사람에게서  저리 고운 꽃이 피어날까. 어 하나하나 색이 더해지고 향기가 묻어난다. 꽃이 피고 계절이 살아난다. 그녀의 입김만 스쳐도 시들어가는 이 생동한. 

어디까지고 시이고 어디까지가 감상인가. 박연준 자체가 장르이고 시이고 글이다.


당신.
한 번은 순진해져야 해요. 백치처럼 순진해져야 해요. 기댈 데가 시밖에 없는 사람처럼요.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어떤 것도 막지 마세요.
생각은 종이 위에서 하세요.
감정이 과하다 싶어도 겁내지 마세요.
물기가 그리워지는 시간이 와요. 온다니까요.
당신에게서 태어날 아름다운 시들을 기다릴게요.

시는 뒤뜰이나 구석에서 나오는 목소리여야 하고, 자연스레 빛나야 한다. 연필은 태어나는 시가 지닌 열기, 핏기, 비린내, 약간의 뭉그러짐, 취약함, 그리고 이 모든 불완전성에 둘러싸인 '숨은 비범함'까지 온전히 받아준다.


그녀 신명 나게 활자 위를 뛰고 날아다닌다.

그녀의 언어를 소화하기 위해 시집 '누스 푸디', 산문집 '모월모일'을 신들린 듯 먹어치웠다. 부디 소화시킬 깜냥이 되기를 바라며.

죽어가는 것들이 두 번째 세 번째 삶을 살아간다. 시인의 눈매에 시인의 손끝에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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