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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07. 2024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

임솔아 '최선의 삶'을 읽다

막연한 단어로만 꺼내보았던 미래가 현실 속에서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소영은 현실이라는 그물로 미래를 포획하는 유일한 아이였다. 제 마음대로 꽃을 피우고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읍내동에서 살 것 같은 손님도 외제 차를 몰 것 같은 손님도, 병신과 병신 아닌 사람으로 나눌 수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믿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우리를 더 가깝게 연결했다. 그라나다. 진짜 죽여주는 도시.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는 자꾸 중얼거렸다. 그라나다.


아람은 나를 주워온 고양이처럼 대했다. 소영과 싸웠던 그날부터 쭉, 아람은 나를 버려진 고양이처럼 대했다. 집을 나가자던 아람의 제안이, 나를 주워가기 위한 것이었을지 몰랐다.


"누굴 죽이려고 식칼을 싸들고 다녀? 아람은 싱글싱글 웃으며 물었다. "칼은 죽이려고 쓰는 게 아니라 보호하려고 쓰는 거지." 나도 모르던 대답을 나는 하고 있었다.


타투이스트는 사람마다  통증이 다르다고 했다. 누군가는 아주 커다란 상처를 새겨도 아프지 않고, 누군가는 아주 작은 상처를 새겨도 남들보다 더 아프다고 했다. 문신을 새기는 것을 상처를 새기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과 덜 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아픔을 많이 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시를 읽으려는 생각이 발단이었다. 예상과 달리 먼저 눈에 띈 건 소설이었다. 임솔아. 솔잎향이 날 것 같은데, 발음되는 순간 바다가 쏟아지던 시인. 그녀가 토네이도보다 강력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첫 페이지를 넘긴 순간 그녀가 쳐놓은 견고한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꼼짝할 수 없 그녀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깊고 푸르렀으며 끝을 알 수 없었다. 후폭풍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핵폭탄을 맞은 듯 얼이 나갔다. 시인이 말하는 소설은 어떤 느낌일까. 단순한 호기심은 태풍을 가르고 홀로 남겨질때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측정되지 않는 무게만 남기고 침묵한다.

 그녀가 발음한 단어, 읊조린 문장하나까지 세포 속을 파고들었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감정과 경험이 있다고 믿었다.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존재하지 않는다 믿었던 언어를 뱉었다. 무심히. 그녀가. 시인이 낳을 수 없는 언어도 있을까.


운전하며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영화 같은 이야기가 들려온다.

 '브라질에서 우루과이로 향하던 비행기가 난기류로 스페인에 착륙했다. 승객들은 당시 상황을 공포영화 같았다며 표현했다.'

불안, 공포, 두려움, 어른거리는 죽음의 머리카락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단 두줄로 표현된 문장 속에 담지 못한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글은 사람을 담아내지만 표현되지 않는 상황과 감정이 있다. 떠올리려 해도 차마 옮겨질 수 없는 것들. 그 문턱 앞에서 자주 돌아섰다. 놓아주어야 할 순간과 놓을 수밖에 없는 기억이 있구나 단념했다. 글이 가진 한계치구나 체감하며.

임솔아는 단숨에 편견을 찢어발겼다. 쭈욱. 종이 밖을 뛰쳐나와 울부짖는 언어들. 그 소리를 듣는 작가. 바다향을 머금은 푸르디푸른 작가는 어떤 경험을 한 것일까. 살 속에 베어든 고통이 어디까지 가야 쓸 수 있는 이야기일까. 알지 못하는 슬픔은 서글펐다. 스며든 방울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끝을 알지 못하는 슬픔은 잔인하다.

살갗에 닿은 그녀는 날카롭고 예리하나 측은하고 아름다웠다. 다 쏟아냈다 말하는 그녀 입가가 아직은 넉넉하다. 담기지 못한 감정은 쓸쓸히 뒤돌아간다. 다음을 기다리며. 다음에 올 다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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