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Jul 14. 2024

리스펙트,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모든 삶은 흐른다' 읽고

화려한 빛으로 꾸미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어. 몇십 년 만의 해후라도 너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나의 바다, 우리의 푸르른 날.

뻔하지 않은 플롯으로, 검푸른 뱃살 출렁이며 네가 왔다. 바다는 삶이고 삶은 바다이므로 흐른다. 흘러간다. 막아도 막을 수 없는 해류처럼 삶은 흘러간다. 철없는 파도가 암초를 두드리고 성난 폭풍이 토악질해도 키를 놓지 말라 온몸으로 부딪히라며, 바다가 온다. 침묵하되 너를 휘젓던 바람, 해일, 천둥은 기억하라며 바다가 온다. 단, 물러설 때를 알고 물러설 줄 아는 것은  용기.


바다를 가득 담고 흘러들어온 책. '모든 삶은 흐른다.' 작고 네모난 책 안에 기어코 바다를 싣고 돌아온 당신.  지중해, 태평양, 사해까지 잊지 않고 꼬박 데려왔다. 잊고 지던 바다를 원 없이 만났다. 어쩌면 이미 바닷속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몸에서 바다향이 난다. 짭조름한 소금비늘이 돋았다. 지느러미가 돋고 아가미 생겼다. 염분이 몇 % 든 깊이가 얼마큼이든 중요한 건 바다는 그 바다다. 격랑에 얼굴 잃 하늘이 그대로 비친다. 팔과 가슴밖에 없어서 안는 것 밖에 도리 없는. 흰 손으로 발목 쓰다듬고 노래 들려주러 돌아왔다.

까끌한 모래는 바다의 혓바닥, 잊어버리며 찍힌 발자국 마저 지워버린다. 어디까지 왔나 가늠해 보지도 말저 바다는 앞만 보고 가란다.

성난 파도가  대들어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바다가 온다. 풋익은 상상으로 줄기차게 그던 바다. 불가사리, 조개, 산호초. 아기자기한 장신구 매단  바다는 오색찬란한 꿈이다.

지는 해 세며 어른이 되어 가던 바다 곁을 두며 늙어간다. 늘어난 주름아래  곱던 피부는 바래진 빛깔로. 거칠어진 손 맞잡고 우리를 이야기한다. 조금 더 짙은 에메랄드빛이었던 그때의 우리. 필요이상으로 숨길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는 우리가. (지나간 바다도 건너갈 바다도 다가올 바다도 리스펙트 하며)


*리스펙트 respect : 힙합뮤지션 사이의 동료애로 상대를 향한 존중의 마음을 표현하는 용어.





바다는 우리에게 자유를 미루지 말라고 말한다. 인생을 제대로 산다는 건 쓸데없는 걱정으로 나 자신을 가두지 않는 것이다.


바다는 그대로 자신을 내보인다. 우리의 인생도 똑같다. 필요이상으로 숨길 필요도 꾸밀 필요도 없다.


 모든 섬은 마침표와 같다. 바다 한가운데에 찍힌 점.'나는 나'라고 하는 강조라고? 아니, 이것은 선언이다. 자신에 대한 선언. 페테르 1세 섬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특정한 무언가에 의해 분류되지 않는다. 나답게 사는 것은 어렵지만 뿌듯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것. 우리가 배워야 하는 태도다.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신이 나름의 속도로 온다.


바다는 파도가 오지 않도록 막거나 무리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건 바꾸려 하지 않고, 다가오는 건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려움이 닥쳐도 그건 그냥 삶의 한 순간일 뿐이다. 결국엔 모두 스쳐 지나갈 순간, 어떤 것에 실패해도 그것이 실패한 것이지, 나의 존재가 실패는 아니다. 나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존재다. 그러니 그게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말자. 겨울나기는 여전히 거친 항해와 같지만, 실패해도 우리는 나답게 살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것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