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로 출근할까 했는데 피곤함에 덜미를 잡혔다. 이불속에서 벗어나기 싫다. 나가기 싫다. 누워서 책이라도 읽을까. 딸아이 참관수업에 가야 하는데 거울을 보니 왠작달막한 산신령이 서 있다.
첫 대면부터 '너희 엄마 산에서 내려오셨어? 혹은 '이야~ 너희 엄마 Rocker(롹커)야?'라는 오해를 받게 할수는 없었다. 꼼지락대다 미루고 미루다 몇 개월 동안 미뤘던 미용실행을 택했다.
딸아이는 아침부터 옷코디를 해주며 '예쁘게'에 밑줄을 치고 별표를 그리며 강조했다. 평상시 나의 스타일이 너무 친환경적이었나. 심드렁한 엄마 반응이 못 미더웠는지 대놓고 압박을 가했다. 아이 요구조건은 간단(?)했다. 편한 티셔츠와 바지 NO. 운동복차림 NO. 청바지 NO. 민낯 NO. 하늘거리는 원피스 OK. 손으로 긁으면 나올 만큼 두툼한 피부화장 OK, 거미도 그네 탈 수 있을 만큼 과격한 마스카라 OK.분홍립스틱은 필수.
제발 가지 말라는 방바닥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상투머리를 나풀거리며 나섰다.미용실은 그날 기분에 따라 정한다. 적당히 유쾌한날에는 MBTI성향 'E'원장님이 계신 곳으로, 다운된 날에는 'I'원장님이 운영하시는 미용실로간다.E 미용실은 늘 사람이 미어터진다. 시장통 한가운데서 머리카락을 자르는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E미용실을 가면 'I'형 손님은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쓸려 쥐도 새도 모르게 헤어를 완성하고 나올 수 있다. 'I '미용실에 가면 침묵의 바다에 익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닥을 긁고 긁어 이야깃거리를 모아야 한다.
말주변도 없고 유머도 없는 나를 남편은 통나무라 부른다. 통나무는 침묵의 바다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화거리를 찾아 헤맨다.
오늘은 피로에 절어 있는 상태라 가까운'I' 미용실로 향했다. 'I'미용실은 절간이다. 조용해서 슬픈 ' I' 미용실 TV에선 아이들이 3일째 굶고 있다는 가슴 아픈 다큐멘터리까지 방영되고 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만 또렷이 들린다. 어젯밤 부족했던 잠이 이제야 찾아온다. 눈꺼풀이 무겁다. 사알짝 눈을 감으니 자연스레 잠이 찾아온다. 이대로 10분만 잤으면 좋겠다. 원장님이 사라락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볕에 앉은 고양이처럼 노곤해진다. 졸다가 깨어 보니 마무리단계다.
"앞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I' 원장이 건져 올린 한마디에 ' I '형 손님이 잽싸게 받아친다.
"눈썹 보일만큼만...."
서걱서걱, 서각서각, 사각사각. 가위질 소리가 연필소리로 들린다. 우리는 한석봉과 어머니가 되어 비장하게 걸터앉았다. 원장님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는 연필을 쥐고 글을 휘갈긴다. 한 사람은 가위로 다른 한 사람은 연필로 고단한 삶을 풀어낸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우린 침묵에 익숙한'I형' 인간이니까.
그런데 원장님, 세세히 말하지 않았다고 너무 짧게 자르신 건... 아니죠? 몽실이 언니처럼 짤막해진 앞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