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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ul 02. 2024

피리 부는 비, 회색

비를 사랑하는 사람이 모인다

비 오는 도서관. 빼곡히 아침이 다 채워졌다. 비를 사랑하는 사람만 죄다 모였나. 비는 시를 부르고 회색빛은 사람을 부르는 법. 피리 부는 사나이가  유유히 걸어간다. 그 뒤를 비를 닮은 이들이 따른다.

올 때마다 나를 다소곳이 맞이하던 리가 다른 이로 채워져 있다. 며칠 뜸했다고 새 마음이 변했나. 하긴 내 자리라고 이름 써둔 것도 아닌. 괜스레 서운진다. 비련의 여인이 되어 다른 자리를 물색한다. 오른쪽 귀퉁이를 돌자 너른 자리가 보인다. 번에는 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냉큼 앉는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혀지네'라는 노랫말처럼 자리는 다른 자리로 잊힌다.


"언젠가 마주칠 거란 생각은 했어
한눈에 그냥 알아보았어
변한 것 같아도 변한 게 없는 너
가끔 서운하니
예전 그 마음 사라졌단 게
예전 뜨겁던 약속 버린 게
무색해 진대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만 미안해하자
다 지난 일인데
누가 누굴 아프게 했건
가끔 속절없이 날 울린
그 노래로 남은 너
잠신걸 믿었어
잠 못 이뤄 뒤척일 때도
어느덧 내 손을 잡아준
좋은 사람 생기더라 음 오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


노랫말을 속으로 흥거리며 책과 노트를 주섬주섬 꺼냈다. 쾌적함과 고요가 있으니까. 앉지 못한 자리도, 그림자처럼 따르는 미련 괜찮다. (정말로)

독서대 없이 지지가능한 벽 있다. 창이 없어 나무와 새를 볼 수 지만 뻗은  여백이 있다.  공간을 가로질러 중심을 튼다. 오롯이 내가 앉는다. 비따라 딸려온 글을 주섬주섬 내려놓는다.


두드린다.

연못 위 파동처럼

무수히 남긴 동그라미.

크고 작은 슬픔이 토독토독 떨어진다.

15330일,

묵혀놓은 일기장까.

나도 모르는 인의  등허리일까.


눈물자국 남을까 부지런히 훔친다.

저 따뜻해 주르륵 흘리 운다.

혼자 울지 말라 자국 저.

흐를 새 없이 닦아 손.


여름

릿한 그림 리고

뭉개진 시야 날숨을 내뱉는다. 

가끔은,

듬성듬성 보고 흐르듯 넘기라며

고요가 내미는 것들. 

 눈에게 건네는 속삭임.


스타카토에게 건넨 방울 전주곡.


하얀 책상에서 하얀 종이에 하얀 마음을 담는다. 눈 내리지 않아도 찮은 날이다. 비가 와서 다행인 11시다. 지금은 그어진 빗금마저 투명한 시간이다. 쓰지 않아도 시()가 되는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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