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
소파 위 막대사탕 빨대 하나, 식탁 위 과자봉지 하나, 책상 아래 오리다 만 색종이, 거실 중앙 매미허물처럼 벗어놓은 잠옷. 집안 곳곳에 아이의 행적이 생생하게 남겨져 있다.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떨어뜨린 빵조각처럼. 자신의 흔적을 차곡차곡 착실히도 이어놓은 아이. 잔소리폭탄 투여 하려다 아이의 흔적만 하나씩 집어 올렸다. 사랑하는 내 아이가 생생히 살아 내 곁에 있다는 증거이며 오늘도 무언가를 생산하고 소비한 열정의 흔적이므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루하루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물리적인 생활공간, 일터, 공공장소에서.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에서. 현실공간에선 빼박증거로 검거될 소지가 많지만 온라인상에선 투명인간이라도 된 양 마음껏 활개치고 다닌다. 대범하게 짐승의 탈을 쓰고 여기저기 칼을 휘두른다. 익명성을 악용해 타인을 쉽게 비난하고 공격한다. 인터넷 sns 등은 양날의 검과 같다. 편리함과 유용함이라는 날개를 달고 있지만 시퍼런 칼날은 언제든 누군가의 심장을 겨냥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악의적인 글과 무심하게 갈긴 댓글로 피지 못하고 진 꽃봉오리가 얼마나 많은가. 정신적 충격으로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한 초목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쉽게 흔적을 남겨선 안된다. 나 역시 상처받아 본 1인으로서 온라인상 언어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했다.
순간의 감정조절 실패로 휘두르는 손과 입은 더 이상 신체의 소중한 한 부분이 아니다. 예정된 살인무기일 뿐이다. 사고의 필터 없이 남겨진 흔적은 상흔을 낼 수 있는 칼이다. 누군가의 칼끝이 불특정 인물이 아닌 자신의 지인이나 사랑하는 가족을 향해 있다면? 그래도 붉고 푸른 독을 쉽게 뿜어댈 수 있는가.
얼마 전 아이의 동화책에서 온라인상 흔적을 지워주는 세탁소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한 아이가 욱한 감정으로 올린 글이 누군가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아이는 뒤늦게 후회하며 온라인상 흔적을 지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 어린이독자를 타깃으로 쓴 동화지만 어른동화로도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보다 미성숙한 어른이 읽고 깨우쳐야 할 이야기였다.
어른의 성숙한 온라인 에티켓이 우리 아이가 가질 기본예절과 규범의 초석이 된다. 투명인간이라는 만능치트키를 쥐기 전에 자신의 손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그 행위가 정당한지 한 번 더 숙고했으면 한다. 모든 생명체는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내 손 끝에 꽃이 달렸는지, 칼날이 달렸는지는 인식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