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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고백
울 행님은 현직 복서!
얼마나 자세히 보아야 예쁠까요?
by
진아
Aug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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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생신날,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였다.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야기 주도권은 단연 전직복서(?)로 의심되는 울행님(시누이)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펀치를 날리신다.
"니는 와 촌에 시집와가꼬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농사짓고 쌩고생을 하노? 하긴 니는 내보다 낫다. 울 시댁은 더하다. 알제?
울집은 그래도 시엄마도 좋고 다른 식구들도 다 좋다이가~"
"예..에에?..."
"에효~ 버럭이(남편)가 뭐가 좋데? 하긴 자세히 보믄 버럭이도 귀엽긴 하다. 저 봐라. 자세히 보믄 속눈썹도 길고 귀엽지 않나?"
'아, 아니, 행님. 얼마나 자세히 봐야 호박이 수박으로 보이고 버럭씨가 김수현으로 보이나요? 마이크로나노미터 어디까지 초초초초초근접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되나요? 아무리 눈 씻고 뚫어지게 째려보아도
아무리 오래 보아도 김수현은 커녕 김수현 할배도 보이지 않는뎁쇼. '
나태주시인이 노래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정녕 거짓이었던가요.
'행님, 동생이(버럭씨) 귀엽다해놓구선 왜 버럭씨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지 않으시나요. 어서 귀여운 동생 얼굴에
사랑스런 눈맞춤을 하시어요.'
행
님의 핵펀치에 할말을 잃고 속엣말로 대꾸했다.
나의 소리없는 울림은 끝내 행님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버럭아, 니는 관리 좀 해라, 얼굴이 그기 뭐이고? 요새 남자들도 관리해야 사랑받는거 모리나? 말 나온 김에 모발이식수술 안할래? 누야(누나) 자~알 아는데 있는데."
'해해해엥님
, 행님! 이제 그만 하이소~
버럭씨 눈을 함 보이소 '
버럭씨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벌겋게 타오르는 저 얼굴을 못본걸까. 행님은 다시 연타를 날리신다.
"하아~ 근데 니 이마주름은 우짤끼고? 자~알 아는 피부과 쌤이 기가 맥히게 주사 잘 놓는데. 우찌 같이 갈래? 필러도 좀 맞고, 보톡스 어쩌구저쩌구..#%~@?!..."
멈출줄 모르고 이어지는 펀치에 버럭씨 왈.
"됐다! 고.마.해.라! 내는 생긴대로 살란다, 누야나 주름 마~아이 패라."
정말 울 행님은 전직 복싱선수였을까?
아니다. 훅 날리는 실력을 봐서는 쟁쟁한 현직복서가 틀림없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강냉이를 털어버리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저 실력. 예사롭지 않다.
흠흠, 나도 이참에 복싱이나 좀 배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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