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Aug 14. 2024

울 행님은 현직 복서!

얼마나 자세히 보아야 예쁠까요?

어머니 생신날,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였다.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밀린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야기 주도권은 단연 전직복서(?)로 의심되는 울행님(시누이)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펀치를 날리신다.

"니는 와 촌에 시집와가꼬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농사짓고 고생을 하노? 하긴 니는 내보다 낫다. 울 시댁은 더하다. 알제?

울집은 그래도 시엄마도 좋고 다른 식구들도 다 좋다이가~"


"예..에에?..."


"에효~ 버럭이(남편)가 뭐가 좋데? 하긴 자세히 보믄 버럭이도 귀엽긴 하다. 저 봐라. 자세히 보믄 속눈썹도 길고 귀엽지 않나?"


'아, 아니, 행님. 얼마나 자세히 봐야 호박이 수박으로 보이고 버럭씨가 김수현으로 보이나요? 마이크로나노미터 어디까지 초초초초초근접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되나요? 아무리 눈 씻고 뚫어지게 째려보아도 아무리 오래 보아도 김수현은 커녕 김수현 할배도 보이지 않는뎁쇼. '


나태주시인이 노래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정녕 거짓이었던가요.


'행님, 동생이(버럭씨) 귀엽다해놓구선 왜 버럭씨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지 않으시나요. 어서 귀여운 동생 얼굴에 사랑스런 눈맞춤을 하시어요.'


님의 핵펀치에 할말을 잃고 속엣말로 대꾸했다.

나의 소리없는 울림은 끝내 행님에게 닿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펀치를 날리기 시작했다.


"버럭아, 니는 관리 좀  해라, 얼굴이 그기 뭐이고? 요새 남자들도 관리해야 사랑받는거 모리나? 말 나온 김에 모발이식수술 안할래? 누야(누나) 자~알 아는데 있는데."

'해해해엥님, 행님! 이제 그만 하이소~

버럭씨 눈을 함 보이소 '

버럭씨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벌겋게 타오르는 저 얼굴을 못본걸까. 행님은 다시 연타를 날리신다.


"하아~ 근데 니 이마주름은 우짤고? 자~알 는 피부과 쌤이 기가 맥히게 주사 잘 놓는데. 우찌 같이 갈래? 필러도 좀 맞고, 보톡스 어쩌구저쩌구..#%~@?!..."


멈출줄 모르고 이어지는 펀치에 버럭씨 왈.

"됐다! 고.마.해.라! 내는 생긴대로 살란다, 누야나 주름 마~아이 패라." 

정말 울 행님은 전직 복싱선수였을까? 아니다. 훅 날리는 실력을 봐서는 쟁쟁한 현직복서가 틀림없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강냉이를 털어버리고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는 저 실력. 예사롭지 않다.

흠흠, 나도 이참에 복싱이나 좀 배워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해야 하나요, 슬퍼해야 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