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아 Sep 09. 2024

나른한 오후 꽁꽁 얼려 드립니다

멈추지 않는 아재개그

1

토요일은 오전진료만 하는 날이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내달린다. 아침식사도 진료 후로 미루고 부리나케 달렸다.

다행히 진료접수 마감 전에 도착했다. 1시간 기다림 끝에 무사히 진료를 마쳤다. 뿌듯한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가을하늘이 이제 눈에 들어온다.


"얘들아, 하늘 좀 봐. 구름 하나 없이 너무 곱다, 그치? 하늘색 색종이 같당."


감상에 빠진 엄마와 달리 남매는 시큰둥하다.


"엄마, 배고파."


마침 병원 맞은편에 베이커리가 보였다. 빵과 음료를 하나씩 고르고 테이블에 앉았다. 우유를 몇 모금 마시던 딸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어떡하지? 여기에 먹기 전에 흔들어서 먹으라고 적혀 있는데."

규칙이나 사용법 등 적힌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평소 모든 생활에 있어서 FM 딸아이에겐 나름 심각한 문제다. 슘성분으로 인한 침전물이 내 몸에 들어온다니! 어허 참, 이런 낭패가. 딸아이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아이의 불안과 걱정을 감지한 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우유 다 마시고 나서 배를 요렇게 흔들어서 섞으면 되지~ shake, shake~~ 어때? 뱃속에서도 우유가 골고루 잘 섞이지~ 으하하하!"


그제야 아이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혼자 신난 불혹의 엄마는 일어서서 엉덩이까지 흔들기세다.

shake, shake~~

오우, 예~~

살그머니 남매가 베이커리를 나선다.

"저, 저기.. , 얘들아. 엄마도 데리고 가야지."

...



2

평일 오후, 딸아이와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약국 옆 마트를 갔다. 약국 옆 마트는 아이에게 참새 방앗간이다. 받기 싫은 진료를 잘 끝내고 약도 잘 지었으니 응당 달달한 먹거리로 상을 달라는 무언의 약속이 되었다고나 할까. (나는 약속한 적 없는데 아이 혼자 찰떡같이 믿고 한결같이 지키고 있다.) 오늘도 엄마 손을 자연스레 이끌고 참새방앗간으로 입장한다. 한 번에 멀티활동이 가능한 딸은 달달구리 단골메뉴 알록달록 젤리코너를 빠르게 스캔하고 tv에서 눈여겨봐 둔 신제품도 손짓 발짓 상세 설명해 가며 눈은 이미 초콜릿 코너를 훑고 있다.


"딸, 자유시간(초콜릿 바) 새로운 맛 많이 나왔네. 근데 이건 뭐야. '충전시간'? 이것도 초콜릿 바인 것 같은데 새로 나왔나 봐. '자유시간', '충전시간'.. '잠든 시간'도 나오겠는데.. 으하하하."


"엄마, 쫌..."


80년대 아재개그를 혼자 하고 혼자 웃고 혼자 신나 떠들어대던 엄마는 9살 딸아이 손에 질질 끌려 마트 밖으로 나왔다. 붉어진 딸아이 얼굴을 보니 당분간 참새방앗간은 가지 않을 것 같다. 큼큼.



초콜릿바 회사 사장님, 다음 초콜릿 바 신제품 이름으로  '잠든 시간'이 별로면 '새참시간', '야참시간'은 어떠신지요?

...

'홍보' 아니고 '내돈 내산' 초코바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