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아

끝까지 도망쳤어야지

by 진아

언제나 그랬듯 엄마 탓이라 여기고 싶었다. 거친 어린 시절도, 울퉁불퉁했던 젊음도, 당신의 거짓말 같은 병명(病名)도. 십이지장암 말기라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암. 희귀 암이란다. 위암, 간암, 폐암만 알았지. 십이지장암이라니. 붙어있는 위치도 기능도 생소한 기관이었다.


'십이지장암은 십이지장에 발생하는 매우 드문 암으로 소장의 일부이므로 소장암에 포함될 수...' 폰을 검색해 십이지장에 관한 글을 빠르게 읽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의학 용어사이 '희귀 암'과 '생존율 5%'라는 어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다른 장기에 다발적으로 전이되었고 수술도 불가한 상태란다. 눈앞이 순식간에 흑백으로 바꿨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세상이 우리만 빼고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자동차 소음도 들리지 않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기댈 곳 없는 엄마가 깃털처럼 가벼워진 엄마가 홀로 앉아있다. 대기실 의자 하나 붙들고 간신히 앉아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단지 당뇨합병증일 거라고, 영양불균형으로 인한 일시적 증세라고 믿었다. 장출혈, 암 같은 다른 경우의 수는 고려하지 않았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온 엄마이기에. 암은 엄마에게 어울리지 않았. 터무니없는 오판이라 믿었다. 내일이면 결과가 잘못됐다고 연락 올 것이다.



"힘이 없고 자꾸 어지러워."

"잘 좀 챙겨 먹어. 혼자 먹는다고 대충 때우지 말고."


병원 검사 전 날,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엄마와 마트를 다녀왔다. 잘 챙겨 먹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뇨에 좋다는 음식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먹거리를 사서 집까지 데려다줬다. 고독이 가득한 빈방으로 그녀가 걸어간다. 뒷모습을 보지 않으려 달아났다. 절뚝이는 엄마 뒷모습에 나약해질까 봐.




북받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병원 화장실로 뛰어갔다. 사십 년 동안 꾹꾹 잠가은 눈물샘이 터졌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나. 낯선 울음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엄마의 죽음이 예정된 상황에서 분노는 멈출 줄 몰랐다. 나를 집어삼키고 급기야 엄마까지 집어삼켰다. 삶이 종착역에 이르렀다는 것도 모르는 바보엄마, 남들 다하는 호사 한 번 못 누리고 흔한 사랑 한 번 못 받아본 불쌍한 엄마, 노인이 되기도 전에 떠나야 하는 가엾은 엄마. 마라는 단어 가슴을 난도질했다. 정이 폭발하듯 흘러내렸다.


자식 버리고 떠났으면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어야지. 운명에 농락당하고 세상에 희롱당하고 죽음에게 덜컥 덜미나 잡히고. 잘 도망쳤어야지. 끝까지 뻔뻔하게 살아남아야지. 이젠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 엄마는 끝까지 이기적이다.

엄마에게 차마 병명도 털어놓지 못하고 초고속으로 입원수속을 밟았다.

리의 지옥행 열차가 출발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