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가족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엄마 한숨에 조각난 일상

by 진아

" 혈압체크하던 그 뚱뚱한 간호사, 싹수가 없어. 뭘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 내 옆에 있는 아줌마, 밤새도록 핸드폰 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어."


" 오늘 병실에 초등학생이 입원했는데 하루 종일 기침을 하네. 폐렴 아닐까. 마스크도 안 했던데 옮으면 어쩌지."


입원 후 엄마의 시시콜콜한 전화가 이어졌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일상은 엄마의 한 두 마디에 열을 일으켰다.

간호사의 불친절함, 같은 병동 환자의 무례함, 타 환자에게 병이 옮을까 전전긍긍하는 불안은 나를 끝없는 어둠으 내쳤다. 간신히 세운 가정도, 겨우 붙들던 정신도 엄마 한숨소리에 휘청거렸다.


그녀는 끊임없이 애정을 구걸하고 나는 모른 눈을 감았다.

' 당신한테 줄 사랑은 없다고.'

우리는 끝도 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지막까지 서로의 온기는 닿지 않아야 하니까.

하루하루가 벼랑 끝에 서있는 듯 불안했다. 평범했던 일상 먼 옛날처럼 아득했다. 엄마의 병을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엄마는 주기적으로 수혈을 받았지만 빈혈수치는 하향곡선을 그렸다. 세상도, 복도, 삶도 엄마에게서 멀어지기만 했다. 가족 지고 젊음도 등진 그녀질긴 목숨 전부인데 그것마저 사그라들었다. 엄마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더 잃어야 할까?


" 퇴원은 언제 한다던? 회덮밥 먹고 싶은데. 병원

나가면 향어회 사주라."


" 미용실 가서 머리카락 잘라야 하는데. 언제 갈까?"


자신의 생명이 꺼져 가는 줄도 모르고 엄마는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쏟아냈다. 진난만한 얼굴로 응석 부리는 게 싫었다.

'난 엄마의 엄마가 아니야. 자식으로서 소한 도리만 할 뿐이라고. 다른 건 기대하지 마'

뱉지도 못할 말들을 수십 번 곱씹다 삼 버렸다.

며칠 후 의사가 보호자 면담을 요청했다.


" 환자에게 병명은 알려줬습니까?


" 아니요. 엄마가 견디 힘드실 것 같아서."


" 의사로서 제 생각은 더 늦기 전에 알려드리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남은 삶을 정리할 시간이

있어야지요"


한동안 엄마에게 병명을 알리지 못했다. 내 입으로 차마 잔혹한 형벌을 내릴 수 없었다. 더 이상 고통 주고 싶지 않았다. 여리고 물러터진 그녀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큰 병원으로 옮 때마다 엄마의 암 덩어리도 커졌다. 의사는 내가 알리지 못한 병명을 쉽게 자연스럽게 입에 담았다. 엄마는 그들의 건조한 말투와 행동으로 자연스레 알게 되셨다.

엄마가 운다. 일곱 살 아이처럼. 나는 그녀 뒤에 숨어서 눈물을 훔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휴지만 내밀었다.


의사는 속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할 것인지 다른 방안을 선택할 것인지 물었다. 엄마 생명줄이 나의 한마디에 달려 있다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괴로움이었다.

아이들 양육에서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결정을 내리는 순간은 늘 곤혹스러웠다. 게다가 이건 생명이 걸린 중대사항이다. 잘못된 선택으로 엄마의 죽음을 앞당길 수도 있었고 섣부른 판단으로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맞이하게 할 수도 있다.

나는 생소한 죽음의 그림자 앞에 무력했다.


의사는 덤덤하게 말했다. 십이지장암은 희귀 암이고 말기라서 술도 어렵. 항암을 하더라도 치료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 후가 좋지 않다. 지금 몸상태로 길어도 석 달이다. 그래도 항암 해볼 의향이 있냐, 아니면 퇴원을 하겠느냐.

선택할 수 없는 답안보다 감정 없이 선택을 강요하는 태도가 더 아프게 다가왔다. 자신의 가족이 죽을병에 걸렸더라도 설명서 읊어주듯 말할까? 미미한 떨림이나 눈곱만 한 고심이라도 느껴지길 바랐다. 저 의사는 돈 버는 기계지, 사람이 아니야. 두 주먹을 꽉 쥐고 진료실을 나왔다.

세상은 눈부셨으나 우리에게 한줄기 빛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믿지 않았으나 엄마는 의 선택을 믿고 따랐다.


"엄마, 우리 집으로 가자."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