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직 살아있는 거지?

잘한 선택도 잘못된 선택도 없다

by 진아

병원에서 어떤 선택도 하지 못했다. 무작정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피도 눈물도 없는 병원에 그녀를 둘 수 없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냥 데리고 나와야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가진 거라곤 자신을 갉아먹는 병밖에 없는 엄마. 그녀를 나의 공간에 들이고 식을 허락했다.

몇십 년을 따로 살아온 터라 살가움보다 서먹함이 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갑갑함과 울화증으로 숨 막혔다. 감추려 노력해도 불편한 마음이 비집고 나왔다.

방방곡곡 종횡무진하던 그녀제는 한걸음 떼기 조차 힘겨워했다. 하나 둘 치아를 잃고 장기기능 마저 잃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화할 수 없는 음식과 해로운 음식을 꾸역꾸역 삼켰다. 거칠고 나쁜 음식을 요구하는 엄마에게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 끝까지 입안의 쾌락만 찾는 당신이 미웠다.

평생 쾌락만 좇다가 여기까지 왔잖아. 정신 좀 차려. 당장 코 앞만 보지 말고 멀리 좀 내다보라고.






암은 스펀지처럼 엄마를 빨아들였다. 가끔 이어지던 통증의 간격이 짧아졌다. 빈혈, 변비, 소화불량, 복통을 동반한 증세에 가속도가 붙었다.

새벽에 거실로 나오면 엄마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작은 움직임이라도 없으면 불안했다.

엄마 아직 살아있는 거지? 미동도 하지 않고 엄마숨소리를 확인했다. 누렇게 뜬 피부와 뼈와 가죽만 남은 야윈 몸. 죽음의 그림자를 확인할 때마다 두려웠다. 워하면서도 곁에 있기를 바랐다.


며칠만 누워 있다 언제 아팠냐는 듯 벌떡 일어날 거지?

엄마를 위해 죽을 끓이고 나물을 무쳤다. 아이를 위해 숱하게 끓이던 죽을 기력이 다해가는 엄마를 위해 끓였다. 그녀를 위해 무언가 한다는 자체가 생소했다.

어린 시절 미치도록 갈구했던 엄마가 죽음을 앞두고서야 온전히 왔다. 날개가 부러져서야 방랑을 멈추었다. 이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새가 되었다.

마음은 망과 연민 어디쯤에 와 있는 걸까? 사랑이라 명명하기에 미움이 컸고 증오라 이름 붙이기엔 아직 심장이 뜨거웠다.

딸로서 대접하는 마지막 식사일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 마음먹었다. 이 또한 겉치레에 불과한 다짐일지 모른다. 손톱만큼도 되지 않는 양심 때문에. 그동안 죽도록 미워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수술은 시도조차 할 수 없고 항암치료도 무모한 도전이라데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머리를 쥐어뜯다가 엄마의견을 묻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엄마의견이 중요한데 왜 묻지도 않았지?


" 엄마, 항암치료라도 받아볼까?"


" 아... 아니. 그거 하련다. 지난번 암 병동 갔을 때 보니까 못 하겠더라. 항암 하는 사람들 아예 정신줄을 놓더구먼."


엄마가 어눌한 말투로 손사래를 친다. 지난번 입원했던 암병동에서 우린 지옥을 보다. 항암치료로 절규하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 영혼마저 놓아버린 처절한 목소리를 지켜봤다.

며칠 뒤 엄마의 재입원을 결정했다. 암전문 병원이 아닌 노인요양병원으로. 항암치료는 포기해도 장출혈로 인한 빈혈과 지속적인 통증은 손 놓고 볼 수 없었다. 인근 요양병원 목록을 추렸다. 언니와 목록을 나눠서 전화를 걸고 어디로 갈지 고심했다. 엄마의 인적상황과 병증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나의 죄를 사죄하듯 읊조렸고 그들은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캄캄한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 빛이 있는 곳으로 그녀를 데려가고 싶었다. 잔혹한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진통제가 있는 병원으로 모셔가는 일 외에는.


젊은 엄마가 노인요병원을 간다. 백미러로 엄마를 훔쳐본다. 창밖을 바라보는 눈이 텅 비어 있다. 찬란했던 꿈, 희망, 열정은 사그라들고 껍데기만 남았다. 어린 시절 내내 갈망했던 엄마가 소멸할 듯 앉아있다.

그때도 지금도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노래를 듣고 있다. 팝송, 발라드, 옛 가요가 흘러나온다. 빛바랜 시간들을 비웃듯 청승맞은 멜로디가 춤춘다.

엄마가 듣는 노래는 모두 슬프고 아프다.






" 엄마, 병원 밥이 원래 싱겁고 맛이 없어. 그래도 건강생각해서 잘 먹고. 필요한 거 있으면 전화해."


입원 절차를 밟고 엄마를 병실로 올려 보냈다. 병로비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다. 엄마는 내게서 얼마나 멀어질 것이며 나는 얼마나 더 도망가야 하는가.

희망 없는 치료라도 무엇이 되든 들어야 했는가. 아니면 남은 삶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정답인가. 무엇하나 뚜렷한 대안도 선택도 없다. 손 안의 모래알처럼 그녀가 스르륵 빠져나간다. 이제라도 놓지 않으려 움켜줘 보지만 빈주먹만 남았다.


엄마, 나는 언제까지 엄마한테서 도망야 할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