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너 참 예쁘다-30
입춘을 앞둔 2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건너가는 중이다. 좌표가 겨울보다는 봄에 가까워졌다. 하얀 계절에서 파릇한 계절로 축이 기운다. 팽팽하던 저울 눈금이 슬며시 봄 쪽으로 머리를 기댄다.
겨울산책의 묘미는 가만히 앉은 채로 숲을 거닐 수 있다는 점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을 쥐고 나무로 만들어진 공책 위를 산책한다. 저 작은 몸뚱이 안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들어있다. 사계절을 품고도 날렵하고도 가볍게 움직인다.
굳이 내보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풍기는 꿈의 향기
향을 알아보는 사람도 대단하지만
연필냄새가 배일만큼 쓰는 사람도
대단하지 않은가
나무에 기대다가
얼굴을 묻다가
여전히 아직도
엄마를 그리는 사람 곁에
그리움을 가만히 세워둔다
모양도 빛깔도 다르지만
연필향 그득한 그의 곁에 머문다면
홀로 떠돌던 나의 그리움도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쓰는 사람에게선 연필냄새가 난다. 얼마큼 글을 써야 연필향이 나는 걸까. 책에 얼굴을 묻고 향이 묻어나길 기다릴까. 킁킁거리며 괜스레 연필을 만지작거리는 오후다.
산은 비어있어도 비어있지 않았다. 호랑이 등허리를 닮은 산등성이는 어떤 세월과 기억을 품고 있길래 자꾸만 눈에 밟힐까. 비어 있어도 비어있지 않은 얼굴이 겹쳐진 까닭일까.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 나간다. 해가 지도록 마음은 돌아올 줄도 모르고.
겨울하늘은 스케이트장
바람이 빙판을 만들면
낮달이 스케이트를 탄다
김연아만 성공하나
나도 트리플 액셀
엉덩방아 찧고 또 찧고
우르르 지나가는 오후
어느새 바람마저 잠든
텅 빈 스케이트장
내일은 누가 얼음길 찾아올까
나뭇잎이 떨어지는 연습을 한다. 잘 떨어지는 법을 배운다며. 계절이 오고 갈 때마다 수도 없이 내려가는 마음. 충분히 낙하 연습을 했더라면 쉽게 놓지 않았을 거야. 일 년에 4번,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선 내려가는 연습을 하자. 삶에도 낙하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기차를 타고 일상에서 멀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리적 거리가 쌓일수록 자유로워졌다. 바다와 하늘이 연결된 도시는 꽉 막힌 숨통을 뚫어주는 듯했다. 하늘, 산, 나무, 하늘, 산, 나무, 바다, 바다, 바다... 도돌임표같이 돌아오거나 밀려나는 풍경들. 삼백육십오일 열린 하늘도 오늘만은 휴일이다. 여행을 떠난 구름과 파르란 기다림으로 남은 캔버스. 오선지 위를 신나게 달리는 기차에는 여행객이 음표처럼 오르내린다. 역마다 쉼표를 찍고 음표는 분주하게 악보 위를 활보한다. 밋밋한 멜로디가 순식간에 경쾌한 왈츠로 바뀌었다. 익숙함은 잠시 장롱 속에 개켜두고. 낯설지만 신비로운 여행 속으로 기꺼이 뛰어든다.
어떤 정답은 단순할수록 진실에 가까워졌다. 뼈대만 남은 단출만 문장이 오히려 심금을 울리듯이.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언어는 애틋한 날을 단박에 데려온다.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에선 '지금 좋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러다 인연이 다 되면 또 후회 없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연재북 마감과 동시에 가족들과 오랜 기간 미뤄뒀던 여행을 다녀오려 합니다. 소중한 글벗 작가님 글방에는 천천히, 너무 늦지 않게 들르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
(※ 여행 중이라 노트북을 미처 챙겨 오지 못했습니다. 핸드폰으로 연재북을 마무리합니다.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