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너 참 예쁘다-29
점점 밝아지는 창밖은 어둠을 자연스럽게 비질한다. 어둠이 쓸려나간 자리에 말간 빛이 퍼진다. 백지 위 산책은 아침을 기다리는 일. 쓸까 읽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새벽바통을 이어받는다. 영하 5도 강추위가 예고된 하루, 아침을 준비하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따뜻한 한 끼와 다정한 눈 맞춤이 부디 하루치 고단함을 이겨낼 힘이 되고 방패가 되어 주길 바라며.
모닝페이지는 희망페이지가 되어
끝내 써야 할 문장을 이끌고 온다
기다림은 도착하지 않은 희망
선착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떼면
지치지도 않는 그가
손을 이끌며 온다
바람은 차고 날은 어둑해
해가 뜨려면
아직 더 시간이 흘러야 해
간절한 대지는
봄을 잉태하고
온몸으로 알을 품지
긴 기다림에 지쳐
울적해질 법도 한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켜쥔 주먹을 펼쳐 보이면
굳게 다문 입술을
활짝 열어 보이는 씨앗
기다림은 도착하지 않은 희망
겨우내 견뎌낼 누군가의 성장통
기다린 편지처럼 도착할 너의 꿈
손에 닿을 듯 말 듯
간질간질한 봄이
오
걷는 걸음마다 마음이 묻어난다. 발자국 사이 흐르는 건 미처 꺼내놓지 못한 이야기들.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지 않으려 빵가루와 돌을 흘리듯 필사적으로 활자를 떨군다. 무엇을 잊지 않으려 흔적을 남기나. 무엇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붙들고 있나. 나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어 여태 활자를 움켜쥐고 있는 걸까.
신병을 앓듯 첫사랑의 열병을 앓듯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몽글몽글 모여서 활자로 흘러나온다. 쓰는 행위는 살아있다는 증거. 얼마큼 숨 쉬는지 울고 웃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매번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쓴다는 건 활자로 호흡하는 일. 글자수는 심장박동수. 매번 심장박동수는 달라지지만 생의 기쁨은 동일하다.
뭉툭해진 연필은 온몸으로 백지를 밀며 나아간다. 굽이 닳고 몸이 축나도 멈추지 않는다. 연필과 한 몸이 되어 하얀 모래사장을 거닌다. 어느새 둘은 한 몸이 되어, 백지 위에서 신나게 미끄러진다.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으면 어떻고 손가락에 박힌 굳은살쯤 어떠랴. 이토록 신나는데.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