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불청객은 떠났다가 봄처럼 돌아온다

계절, 너 참 예쁘다-28

by 진아

대나무가 바람을 만나면 여름소리가 난다. 1년 내내 여름을 품다가 사무치게 그리우면 서걱거리며 우는 잎. 끝과 끝이 만난 계절은 코발트블루보다 청아하다. 잊지 말라며 들려주는 8월의 빛과 소리. 여름 얼굴을 떠올리면 파란 물감에도 눈이 시리다. 이따금 그리우면 초록빛 계절을 소리 내어 발음한다. 얼어붙은 겨울 안에서도 열기가 느껴지는 건 입에 머금은 여름을 통째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여름을 그리워하는 겨울 대나무 숲, 대나무숲이 꺼내놓은 여름기억 한조각 '옥잠화'(오른쪽)



나의 불청객에게


나의 불청객은 떠났다가 봄처럼 돌아온다

어떤 친밀함은 홀수라서

은밀한 감동은 나만의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는 모래가 되어가고

바다는 적셨다가 물들였다가


교집합 속에 기어이 닮은 꼴을 접어 넣고

간격은 측정불가

다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흔들린다


멀어진다는 건 잊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방을 하나 내어준다는데


행여 까만 사막 어디선가

쏙 빼닮은 발자국을 발견한다면

숨겨놓은 기쁨을 꺼내 걸어야지


나의 불청객은 언제든 반길수 있는 문장이라

노크도 없이 찾아온다

다녀간 자리마다 푸드덕 소리 내는 씨앗


가을엔 잘 익은 나뭇잎 책갈피를 보내고

올여름엔 푸릇한 활자를 건네야지

꽃다발로, 아담한 화분으로


알지도 못하는 새벽과 밤을 가진, 그에게

남은 계절을 모두 전해야지

나를 알지도 못하는 시인에게




몇 초 전 지나간 시간의 발자국. 눈물이 될 수도 있고 하얀 눈이 되어 환영받을 수도 있었던 물자국은

동그란 여백이 되었다. 닿을 수 없어서 공간이 된 동그라미. 과거를 데려다 놓고 지나간 골목에는 바람이 불고 연필은 울어도 눈물자국이 번지지 않는다.

눈물은 슬픔의 발자국, 기쁨의 비명. 번지지 않는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숨을 고른다. 동그란 여백 너머 짧은 생을 이어 붙인다.



꿈은 꾸는 게 아니라 매일 가깝게 다가서는 것. 꿈은 거대한 목표가 아니라 매일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하는 오늘. 공기같이 햇살같이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 봄을 품은 잎눈처럼 반발짝씩 내일에 다가서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