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안에서도 리듬을 잃지 않는 우리는

계절, 너 참 예쁘다 -27

by 진아

겨울은 강하고 나는 약하고. 때로 겨울은 약하고 나는 강하고. 강약 강약 셈여림을 주고받는 우리는, 겨울 안에서도 리듬을 잃지 않는 우리는 빼고 나누며 균형을 잡아간다. 흰 잇몸을 드러낸 1월과 그 사이를 걷는 새는, 홀로 설 날이 두렵지 않을까. 중심을 아는 듯 걸으며 또 날아간다.


새벽의 발자국은 새의 발자국을 닮아 가볍고 선명하다. 어둑한 길에 찍힌 화살표. 새벽은 짧은 선물이지만 깊은 흔적을 남기고 하얗게 단장한 아침은 가보지 않은 언덕을 기웃거린다.


아슬아슬 걸린 구름은 누구 마음일까(왼쪽), 겨울에도 잠시 가을을 빌려드립니다(오른쪽) '구절초'



아버지의 생신


엄마가 머물다

아빠가 세든 얼굴은


헤픈 눈물이

순해빠진 웃음이

찌그러진 한숨이

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


달아나려 해도

눈처럼 쌓인 당신은

필름같이 새겨지고

둘은 펜처럼 걸었다


지나간 자리마다

새겨진 연필자국


발자국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익숙한 사람이 되고


닮다가 닳다가

닿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멀어졌다 이내

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 시절에 앉았다


당신 아니면 안 되던

다섯 살 아이가

펜처럼 나란히 앉았다




손길은 거칠고 노트북 옆 찻잔은 위태롭게 서있고. 물이 쏟아질까. 내가 먼저 쏟아질까. 찻잔의 불안을 읽고서도 기어이 선을 끌어당긴다. 줄을 당기다 당기고 싶은 건 정작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지. 돌아보지 않는 마음을 콘센트에 접속하고. 충전해야 할 건 기기가 아니라 고집스러운 나였음을.




계절에 마지막을 찍어야 한다면 어떤 부호를 남길 수 있을까. 삶의 끝자락엔 또 어떤 문장부호를 쓸 수 있을까. 쓰면 쓸수록 이어질 이야기는 언젠가 떠날 여행지 같다. 계절과 계절 사이를 거닐며 모든 끝에 새겨질 문장부호를 찾아 떠난다.


높은 밤, 서있을 수 있는 건 손가락뿐이다. 겨울은 창밖에서 안을 넘어보고 겹겹이 껴입은 너는 길을 건너야지. 몸이 있는 줄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이는지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