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禪雲山

by 장한

#11 선운산

'구름 속에서 참선하다'

산행지 : 선운산 (전북 고창)

산행일 : 2025. 04. 05 (토요일)

산행코스 : 선운사주차장- 선운사-석상암-마이재-수리봉(정상)-참당암-소리재-용문굴-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주차장

난이도 : 보통

선운산 등산코스지도 정상이 선운산의 다른 이름인 도솔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한두 방울 차창에 떨어지더니 주차장에서 도착했을 때는 상당히 쏟아졌다. 어제 월출산에서 그 맑고 화창한 봄날씨가 일장춘몽처럼 느껴졌다.

산행 중에 비가 온다면 모를까 시작부터 내리는 비를 맞으며 산행한다는 건 쉽지 않기에 고민이 되었다.

일기예보를 찾아보니 오후에는 비가 그친다고 했다.

함께 산행을 온 춘몽이와 동이는 산행 여부를 내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한다.

무언가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고 부담스럽다.


"조금 기다리다 잠잠해지면 올라 볼까?"


봄이지만 비가 세차게 쏟아지니 쌀쌀했다. 선운산 정상은 비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선운사 주차장에서 가까운 커피숍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몸을 녹이기로 했다. 빗방울은 커피숍의 커다란 유리창을 세차게 두드렸다. 산행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풍경을 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이런 순간이 아늑하고 좋았다.


궂은 날씨지만 관광버스는 계속 들어와 사람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옷차림을 보니 등산보다는 꽃구경을 겸한 가벼운 여행을 하러 온 사람들로 보였다.

다행히도 한 시간 정도를 머무르니 비가 잦아들었다.


"이제 비가 그친 것 같은데 출발하자!"


선운산은 2023년 2월 정상인 수리봉만 올랐다가 하산했었다. 수리봉을 올랐다가 선운산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천마봉까지 갈 계획으로 올랐지만 함께 했던 일행의 체력을 고려해 아쉽게 하산해야 했었다.


'이번에는 다 돌아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불안한 생각을 안고 산행을 시작했다.


동백꽃과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벚꽃길을 따라 선운사까지 이동했다.

4월 초 동백이 만개했다.
선운사 입구.



선운사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석상암까지 700m 정도를 이동하면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됐다. 선운산은 정상인 고도가 336m 정도인 비교적 낮은 산이다 보니 급경사로 오르내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경수산(445.2m)과 수리봉 갈림길인 마이재까지 짧은 구간을 오르면 가파르지 않은 능선길로 수리봉까지 갈 수 있었다.

정상은 선운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간다.



봄비를 맞은 산길에서는 풀향기와 흙냄새가 조금씩 올라와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겨울 내내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석상암에서부터 시작되는 등산로는 마이재까지 완만한 오르막이다.



수리봉에 도착했다. 탁 트인 전망도 없는 곳인데 비 온 후라 시계視界까지 나빴다. 선운산은 정상인 수리봉만 오른다면 '동네 뒷 산 같네'란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천마봉이었기에 인증을 마치고 천마봉으로 이동했다. 수리봉에서 천마봉을 가는 건 2개의 산을 타는 것과 비슷했다. 두 봉사이에 있는 참당사까지 완전히 산을 내렸다가 천마봉을 올라야 하는데 각 봉의 해발고도가 낮고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그나마 오르내릴만했다.

선운산 수리봉 정상석



완만한 흙길을 따라 내려가 참당암 갈림길에 도착해 보니 선운산에서 참당암까지 이어지는 길이 나왔다. 포장된 길은 아니었지만 왕복 2차선 이 들어서도 되겠다 싶은 정도로 넓은 길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산행을 시작. 창담암에서 천마봉 가는 길은 개이빨산(346.6m)과 천왕봉(303m) 사이 골짜기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으로 시작됐다.

참당암을 내려가는 길 중간에 포갠바위가 나온다.
중간 조망터에서 본 천왕봉 뒤로 천마봉이 살짝 보인다. 천왕봉은 정규등산로가 없는 듯했다.
선운사에서 참당암까지 이어진 임도는 꽤 넓었다.
참당암 갈림길에서 천마봉 진입로



1km 정도를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개이빨산을 들렸다가 다시 천마봉을 갈 수도 있었지만 오늘 같은 날씨에는 수고에 걸맞은 풍경을 장담 못하기에 과감히 포기하고 용문골, 낙조대로 향했다.

소리재 이정표. 견치산(개이빨산)을 다녀오는 분들도 종종 있다.



천상봉을 약간 지나면 전망하기 좋은 바위가 나온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용문굴 주변의 암릉 협곡과 뒤로는 하늘을 향해 뛰어오르는 디딤대가 같은 천마봉의 바위가 한눈에 보이는데 그 풍경이 정말 장엄했다. 구름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천마봉은 흐릿하지만 신비롭게 보였다.


설명은 어렵지만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바람에 그 모습을 순간순간 바꾸며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걸 정말 좋아한다.

문득 회사에서 있던 일이 떠올랐다. 비 온 후 하늘이 어두웠던 날, 창 밖을 보다 무심코 "먹구름 가득 낀 하늘이 멋지지 않나요?" 했더니 동료 직원들 반응이 다양했다.

'성격에 문제 있는 것 같다'.

'사람이 너무 어두운 거 아니냐'.

'파란 하늘이 더 좋지 않나?'.

물론 파란 하늘도 좋아하고, 뭉게구름이 예쁘게 떠 있는 하늘도 좋아한다. 단지 먹구름이 낀 하늘도 좋아한다는 얘기인데, '먹구름을 좋아한다'라는 말에 꽂혀 그 이후로는 먹구름 낀 하늘만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천상봉 아래 전망바위
전망바위에서 본 천마봉
전망바위에서 본 용문굴 협곡



전망바위에서 낙조대를 향해 내려가다 보니 용문굴 갈림길이 나왔다. 천마봉을 먼저 갔다가 하산길에 도솔암과 같이 들릴까 싶었는데, 몇 달 전에 다녀갔던 춘몽이가 말했다.

"용문굴 아래로는 크게 볼 게 없더라고요."

"그래? 그럼 지금 용문굴 들렸다가 천마봉에서 다른 길로 하산할까?"


대장금 촬영지로도 유명한 용문굴은 굴이라기보다 자연 터널에 가까워 보였다.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쫓겨난 용이 급하게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만들어졌다는 전설도 있다. 거대한 바위 밑으로 이런 터널 같은 굴 아래 서있으니 자연 앞에 압도되는 느낌이 들었다.

용문굴
용문굴은 대장금 촬영지라고 한다.
용문굴



용문굴에서 나와 막바지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낙조대가 나왔다. 낙조대에서 천마봉과 병풍바위 갈림길이 나오는데 마음 같아서는 병풍바위를 거처 선운산 종주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병풍바위는 입산통제 중이었다. 아쉬움을 안고 낙조대에서 천마봉으로 향했다.

낙조대. 대장금 촬영지로 최상궁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낙조대 전망대. 낙조대에서 보는 일몰풍경도 멋진다고 한다.
낙조대 근처에서 본 사자바위(좌)와 병풍바위(우). 낙조대부터 병풍바위 구간은 4월까지 입산통제를 한다.



천마봉에서 보는 선운산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구름에 휩싸인 선운산과 장대한 암벽사이에 자리 잡은 도솔암은 한 폭의 진경산수화를 그려 놓은 듯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위험한지도 모르고 천마봉의 끝자락에서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천마봉 뒤편으로 펼쳐지는 사자바위와 병풍바위가 솟아오른 풍경 또한 멋져서 다음 선운산 산행은 종주로 다녀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천마봉 표지석
천마봉에서 내려다본 도솔암
도솔암 전경. 한 폭의 진경산수화 같았다.
천마봉에서 본 사자봉과 병풍바위.



천마봉에서 도솔암까지는 짧지만 가파른 구간이 조금 있었다. 꼬꾸라지듯 내려가는 계단에서 천마봉을 보는데 그 높이가 아찔했다.

'저런 곳에서 도솔암을 내려보고 있었다니... 위험한 것이었네' 싶은 생각에 오금이 저려왔다.

천마봉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하산 길.
천마봉. 암릉의 높이와 경사가 무시무시했다.



천마봉 이름은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천마를 타고 건너뛸 때 생긴 발자국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검단선사는 백제 위덕왕 때 활동한 선사로 선운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발자국은 몰라도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천마봉은 하늘 향해 뻗쳐있는 모습이 마치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기차 활주로 같아 보였다.

하산 중 올려다본 천마봉.
하산 중에 본 도솔암



도솔암에서부터 주차장까지는 계곡 옆으로 정비된 서해랑길을 따라 내려왔다. 서해랑길은 전남 해남부터 인천 강화까지 서해안에 인접한 31개 기초자치단의 109개 걷기 길로 약 1,800km 구간을 연결한 국내 최장거리 걷기 길이라고 한다.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걷기 편한 길이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좋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중간에 있다는 진흥굴을 그냥 지나치고 주차장까지 오게 되었다.

서해랑길 시작점에 있는 미륵바우
서해랑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선운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산이다. 돌아오는 가을에 다시 한번 찾고 싶어졌다. 오늘은 구름속에서 선운산을 만났다면 다음은 맑은 하늘 아래에서 선운산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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