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래봉(지리산)

by 장한

#12 바래봉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양의 산'

바래봉과 팔랑치 사이에서 본 지리산

산행지 : 바래봉(지리산) (전북 남원)
산행일 : 2024.05.11(토요일)
산행코스 : 용산주차장(지리산허브밸리)-바래봉삼거리-바래봉-바래봉삼거리-팔랑치-원점회귀 (대략 13Km)

난이도 : 보통


이름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산이 있다.

숨 막히게 아름다워서, 오금 저리게 위험해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울 만큼 높거나 장거리여서 아니면 특별한 추억이 있어서 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심장을 뛰게 하는 산들이 있다. 지리산도 그런 산들 중 하나다.


등산을 시작했을 때 알게 된 한 친구는 연례행사처럼 지리산을 올랐다.

'몇 번을 가도 좋다. 가고 또 가고 싶다.'라며 지리산을 추앙했었다. 지리산 이야기가 나올 때면 종종 이원규 시인의 시를 가사로 써 노래한 안치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부르곤 했다. 솔직히 노래 취향은 맞지 않았지만, 그 친구와 산을 다니는 동안 지리산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어떤 산을 가볼까?' 하며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SNS에서 본 바래봉 철쭉 군락의 화려한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철쭉시즌은 조금 지났지만 내가 늦게 바래봉을 찾은 것처럼 늦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철쭉이 많기를 기대하며 바래봉을 찾았다.


허브밸리~바래봉삼거리 '산행시작은 가볍게'


일기예보는 구름이 많아 흐리다고 했지만 다행히도 날씨는 좋은 편이었다. 이른 시간 허브밸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래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매년 4월 하순부터 5월 중순까지 철쭉축제를 하는데 올해는 이른 더위에 철쭉 개화시기가 빠른 모양이었다. 철쭉이 많이 떨어졌다고 해도 아직 축제 기간 중. 행사를 하기 위한 천막들이 줄지어 있었고 영업준비를 하고 있었다.



포장된 도로가 끝나는 지점부터 등산로가 시작됐다. 임도를 따라 완만한 길이 이어지다가 국립공원공원에 진입하면서 경사는 가팔라졌다. 하지만 등산로라기보다 임도에 가까운 길이 이어졌고, 가파른 오르막이 많았지만 길이 워낙 잘 정비되어 있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단 오르면서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바래봉 삼거리 능선에 오르기 전까지는 남원이 내려다보이는 몇 곳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풍경은 거의 없었다.



바래봉삼거리-바래봉 '철쭉과 어우러진 절경'


바래봉 삼거리를 지나 울창한 침엽수림을 통과하니 드디어 바래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산로는 계단과 데크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아직 지지 않은 철쭉이 그 길을 따라 피어있었다. 오르면서 점점 가까워지는 정상과 주변 풍경이 기대감을 더욱 높였다.

바래봉 삼거리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드넓게 펼쳐진 지리산의 산그리메와 철쭉 군락이 반겨주었다. 철쭉은 절정에서 살짝 지난 상태였지만, 여전히 붉은빛과 분홍빛이 뒤섞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철쭉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상쾌했지만 금방 몸에 한기가 돌았다. 급하게 가방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정상에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다. 명산일수록 정상석과 나란히 사진을 찍는 일은 또 다른 인내를 필요로 한다. 당연한 듯 줄을 서 기다렸는데, 대기줄이 도무지 줄지 않았다.

정상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중간중간 고성이 터져 나왔다.

'거 적당히 좀 합시다!'

'뒤에 사람들 줄 선거 안 보여요!'

이 멋진 풍경을 보러 와서 왜 저러나 싶었는데 사정이 있었다.


정상석 뒤로 사람이 오르기 좋은 바위가 하나 있는데 그 바위에 오르고 카메라의 각도를 잘 맞추면 정상석 위에 선 듯한 사진을 찍을 수 모양이었다. 그런 콘셉트의 사진을 찍는다고 정상석 주변에서 체류시간이 길어졌다.


'아 이래서 대기줄이 줄지 않았구나!'


한편으로 이해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긴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니 나 또한 콘셉트사진에 대한 욕심이 올라왔다.

'하… 내로남불이 따로 없네'.

자신을 나무라며 후다닥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바래봉 정상석, 뒤편에 있는 바위에 서서 카메라 각도를 잘 맞추면 정상석 위에 선 듯 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줄을 서며 갑갑해졌던 마음이 풀렸다. 마음이 풀리니 지리산의 광활한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낮게 드리워진 구름에 휩싸여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지리산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이었다.


'그래, 이런 풍경을 보러 왔지! 정상석이 뭐라고…'

바래봉에서 본 지리산 전경, 왼쪽 구름에 싸인 높은 봉이 천왕봉이다.



정상-바라봉삼거리-팔랑치 '철쭉 능선을 따라 걷다'


바래봉에서 내려와 바래봉 삼거리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바래봉에서 내려다봤을 때 철쭉이 그리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굳이 팔랑치를 갈 필요가 있나 하는 고민이었다.


'그래! 한번 가보자 언제 또 올 지도 장담할 수 없으니…'



팔랑치 가는 길 중간에 뒤돌아보니 바래봉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상석 대기줄도 10배는 더 길어진 듯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바래봉을 오르고 있었다.

바래봉은 '바리때를 엎어놓은 모양의 산'이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리때'는 절에서 쓰는 승려들의 공양그릇을 말한다. 둥글게 솟아오른 능선이 넉넉한 그릇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바래봉



바래봉 삼거리에서 했던 고민과 선택에 대한 보상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삼거리에서 팔랑치로 향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철쭉이 만개한 장소를 지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구릉이었는데 대부분의 등산객이 오르지 않고 지나치는 곳이었다.

분홍빛의 철쭉 군락과 지리산 능선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고, 이런 풍경을 마주하고 있다는 게 더욱 감동적이었다.



철쭉군락이 있던 구릉을 내려와 팔랑치로 향했다. 팔랑치로 향하는 길은 완만하고 편안한 능선길로 이어졌고 곳곳에서 지리산의 장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팔랑치 도착했다. 조금 일찍 왔다면 팔랑치를 가득 메운 철쭉을 볼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상상으로만 감상해야 했다. 팔랑치 전망대로 올라가 보았다.


"역시 지리산이다!"


능선 위로 아스라이 펼쳐진 산줄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고 맑은 공기 덕분에 먼 산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철쭉이 져서 다소 아쉬웠지만 철쭉 군락이 남겨놓은 흔적만으로도 바래봉이 철쭉의 명산이라는 사실을 심감할 수 있었다.


팔랑치가 철쭉이 만개하면 정말 멋진 풍경이라고 한다. 사진 보이는 나무가 대부분 철쭉이었다.
정령치 방향 풍경
팔랑치 전망대에서 본 바래봉
팔랑치 전망대에서 본 지리산 천왕봉



하산 및 마무리 '편했지만 지루했던 하산길'


더 머무른다 한들 철쭉이 다시 꽃 피울 일은 없을 테니 미련을 버리고 하산을 시작했다. 올라오며 봤던 풍경을 그대로 보며 다시 내려가는 하산길은 편하면서 지루했다. 정비는 잘 되어 있어 정말 좋았지만, 양날의 검처럼 그런 점 때문에 더욱 지루했다. 탁 트이는 풍경 없는 딱딱하고 가파른 돌길을 내려가자니 지루하고 무릎 통증만 더 크게 느껴졌다.




아침 햇살에 붉게 빛나던 철쭉과, 끝없이 이어지는 지리산 능선. 이번 바래봉 산행은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었고 바래봉이 왜 철쭉의 명산으로 불리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르게 된다면 철쭉이 만개하는 시기에 맞춰 일출 산행을 하면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점회귀는 고려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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