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의 결

완벽주의자가 완벽을 버리면

마음의 결 | EP.18 나는 지도보다 나침반이 좋다

by 마리엘 로즈


언제나 그렇듯

완벽은 나를 멈추게 했고,
부족함은 나를 걷게 했다




완벽은 나에게 지도를 주었다


길은 그려져 있고,
가야 할 곳은 정확히 찍혀 있다


그런데 너무 정교한 탓에
오히려 한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갈 수는 있는데,
괜히 겁부터 났다


'지금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이 길이 맞긴 한 건가?'



부족함은 나침반 같았다


그리 똑똑하진 않지만,
그래도 어디쯤 가고 있는지는 알려줬다


나침반을 들고 있는 동안엔
이상하게도 한 걸음은 나아갈 수 있었다
정확하진 않아도,
지금 여기서부터는 괜찮았다.



완벽은 나한테 계속 물었다
“이 정도로 괜찮은 거 맞아?”
“더 잘할 수 있었던 거 아냐?”


부족은 다르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그런데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다는 거야.”



예전엔 나도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완벽한 자식, 리더, 부모, 배우자, 동료.


하지만 항상 어딘가 부족했고,

그 부족이 자꾸 눈에 밟혀서

시작도 전에 지치곤 했다



지금은 기준보다 방향을 본다

내가 지금 가는 이 길이

더 나은 사람으로 향하는 길인지.

존경했던 그 사람의 태도와

어디쯤 닮아 있는지.


그 사람을 꼭 따라가려 하진 않았다
그저 참고할 수 있는,

방향 정도로만 생각했다


기준으로 삼으면 조급해지기 쉽지만,
방향이면

내 속도대로 걸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조금씩 나아질 수 있었던 건

내 부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했고,
틀린 건 애써 감추지 않았다


그제야 비로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차분히 고민하게 됐고,
그 마음이 나를 다시 한 발 움직이게 했다



부족함은 흠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었고,
멈춘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연료였다


완벽은 멀리 있는 이상이고,
부족은 지금 곁에 있는 현실이었다


지도는 목적지를 알려줬지만,
자꾸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게 만들었다


나침반은 그저 방향만 가리켰지만,
그 덕분에 내 걸음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


문득 흔들릴 때도 있고,
괜히 위축되어 망설일 때도 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자꾸 되묻는다



이제는 안다
내가 다시 걷는 이유는
모든 게 완벽해서가 아니라,
가야 할 방향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지도 대신 나침반을 쥐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길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앞으로 움직이게 한다



느려도 괜찮다


나는 지금,
분명 올바른 방향으로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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