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은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서 시작된다

1부 숨기고 싶은 감정 | EP.05 무기력

by 마리엘 로즈


“지친 건 일이 아니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나를 탓하는 그 마음이야.”
- Inspired by F. 스콧 피츠제럴드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중에서



별일은 없었다.


그런데 마음이 자꾸 분주했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날인데,

괜히 초조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고,

지금 잘하고 있어도

이게 맞는 건지 자꾸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계속 바쁘게 움직였다.


쉴 틈 없이 계획을 세우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멈추지 말자’고 마음을 밀어붙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애쓰며 지나왔는데,

돌아보니 손에 남은 건 없었다.


애썼다는 흔적만 남았고,

마음은 퍽 비어 있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그렇게 바쁘게 지냈던 이유가

무언가를 이루려는 의지가 아니라,

나조차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써 붙들고 있던,

조금 애틋한 끈이었다는 걸.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르다.

손이 자꾸 핸드폰으로 간다.
생각도 없고, 의지도 없다.
눈은 멍하니 액정을 바라보지만
아무 기억도 남지 않는다.


계속 넘기고만 있다.
아무 의미도 없이.


해야 할 건 많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알고 있다.
지금 당장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일어날 필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침대에 조금 더 붙어 있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으면 좋겠다.




나는 숨을 쉰다.


그 숨조차
내가 쉬는 건지,
그저 살아 있어서 흘러나오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럴 때면 나 자신에게 괜히 화가 난다.


왜 이렇게 의지가 없지?
어디가 고장 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손은 또다시 핸드폰을 들고,
눈은 화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너무 지쳤다.


그래도
이 감정을
이렇게 적어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아직 괜찮다고
조금은, 안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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