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의 결

내가 좋아하면 다 좋아할 줄 알았어

마음의 결 | EP. 14 좋아서 썼는데 왜 아무도 안 읽지?

by 마리엘 로즈


좋아하는 글과 읽히는 글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다는 것


나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을 줄 알았다.

예전에 플리마켓에 나간 적이 있다.
친구와 나란히 테이블을 펼쳐놓고,

각자 만든 키링을 내놨다.


서로 상대의 키링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야, 그걸 누가 사?”


그런데 그걸,
정말 누군가가 사 갔다.
각자의 것을 각자의 눈으로 고른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신기해했다.

그때 알았다.

내 눈이 다가 아니구나.
사람들의 눈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구나.
다르다는 게 곧 틀렸다는 뜻도 아니구나.


이 단순한 깨달음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다시 떠오른다.




글쓰기는 참 묘하다.

처음엔 ‘내가 좋아서’ 쓰기 시작했다가도,

막상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게 되면

그 글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 순간부터는

읽는 사람의 시간과 마음을 고려해야 하는 것,

그게 진짜 ‘글쓰기’다.


내가 진심을 담았다고 해서

그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건 아니니까.


좋아서 쓰는 글은 ‘일기’고,
읽히는 글은 ‘작품’이다.
이 둘은 닮은 듯, 다르다.


가끔은 이런 순간이 온다.


내가 정말 좋아서 쓴 글인데 반응이 없을 때.
혹은 반응은 좋은데 정작 내 안이 허전할 때.

그럴 땐,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혼란스럽다.


내 안에서 나오는 글을

바깥 세상으로 건네는 이 작업.

그 사이 어디쯤에서 중심을 잡아야 하는지를

매번 새롭게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글쓰기는 조율이다.

내가 너무 나로만 머무르지 않도록,

너무 바깥만 바라보지 않도록,

중심을 붙드는 일.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글은

꼭 화려할 필요도, 특별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마음을 전하려는 애씀은 분명히 느껴져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

그리고 누군가가 읽고 싶어하는 글,

그 사이를 좁히는 게 글쓰기의 본질이 아닐까.



그래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내가 너무 기울지 않도록,
너무 바깥만 바라보지 않도록.

글을 쓴다는 건,
내 마음을

타인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안에서 시작된 문장이
누군가의 마음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나는 매번, 다시 조율한다.


오늘도 문장을 고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글, 나도 좋고 너도 좋을 수 있을까?”
“이 문장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 물음이 있는 한,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누군가도 좋아해줄
그 중간 어딘가를 향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꿈에는 내 목소리도 같이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