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엘로즈의 인간관계론 제 6 장
제 5 장 오만, 자만, 기만 (feat.나를 만든 단어들)(이전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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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려는 사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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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은 법이 판단할 일이다.
사람은 감정이라는,
통제 불가능한 장치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법에도 '정상참작'이라는
조항이 있는 것 아닐까.
그 누구도
처음부터 나쁘게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상처 위에 세운 믿음을
끝내 의심하지 못한 채 살아갈 뿐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날 때
내 기준과 깊이로 그 사람을 단정하지 않는다.
내가 더 깊다고 해서,
그 사람의 얕음을 탓하지 않는다.
그가 얕은 게 아니라,
그 깊이까지 도달할 시간이 없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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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사람의 인생을
한 장면씩 돌려보며 따라가 본다.
마치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보는 것처럼.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던 선택도,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보인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그렇게 도망쳤는지,
왜 그렇게 자꾸 아픈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는 모든 고통을 조용히 만들고,
모든 비난을 멈추게 한다.”
by 블레즈 팡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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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난보다 이해가 오래 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의 서사를 듣는다.
그의 말이 아니라,
그 말 뒤에 있는 맥락을 읽는다.
그의 표정이 아니라,
그 표정 너머에 있는 고백을 듣는다.
그의 잘못을 정죄하는 대신,
왜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는지를 묻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경험의 틀 속에서
자기만의 옳음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게 때로는 어리석고 폭력적이더라도
그에게는 나름의 논리이고,
생존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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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마음으로만 올바로 본다.
본질적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by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나는 본질을 보고 싶다.
그 사람의 말실수, 표정, 과거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려고 했던 '의도'와
끝내 지키지 못한 '상처'를 함께 품고 싶다.
누군가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사람을 이해하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고 있을 뿐이다.
by 칼 로저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 위에
사람을 이해하려는 내 태도를 세운다.
내가 품은 이해가
누군가의 생애를 단 한순간이라도
가볍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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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해한다.
그 사람이 되어보려 애쓰는 동안,
어느샌가 내 마음은 더 단단해지고
조금은 더 평온해진다.
상처를 상처로 되갚지 않기 위해,
나는 묻고, 듣고, 따라가본다.
그 여정의 끝에서 내가 얻는 건
그 사람의 사정만이 아니다.
결국,
이 모든 이해의 시도는
나의 평화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정의란 관점의 차이이다.
강의 이쪽에서는 정의로운 일이
저쪽에서는 불의가 된다.
by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