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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대하는 방식으로, 나를 알다

마리엘로즈의 인간관계론 제 7 장

by 마리엘 로즈


제 6 장 나는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다.(이전글)


'너 자신을 알라'


익숙한 이 문장 앞에서,
나는 늘 '왜'부터 묻는다.


나의 인간관계는 그 '왜'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이 말은
수많은 책과 강연에서
자기 성찰의 상징처럼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장을
자아 탐색의 신호탄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질문은 곧장 '나'에게로 향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성향을 가졌고,
무엇을 원하는가.


하지만 나는
이 고전적인 문장 앞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왜'를 붙인다.



왜, 나를 먼저 알아야 하지?



나는 사회적 존재이고,
타인을 통해 나를 인식한다.
상대의 말과 눈빛, 침묵과 감정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어쩌면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타인을 통해 비추어진 내가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


'나'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너를 아는 나'를 기준으로
스스로를 바라본다.


왜 저 사람은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는 그 말에 유독 아팠을까.
왜 나는 그 사람 앞에서 조용해졌을까.


그 모든 '왜'는 결국, 나를 설명한다.

나는 나를 알기 위해,
너를 이해한다.

그리고
너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나를 표현하고,
나를 증명한다.


즉,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는
그 사람의 품성과 깊이가 스며 있다.

상대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조용히 나 자신을 드러냈고,
그러한 태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증명되어 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멀리하고 싶은
세 가지 태도가 명확해진다.


오만, 자만, 기만.


나는 오만하지 않기 위해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만하지 않기 위해
성과를 절제하며,

기만하지 않기 위해
감정과 말이 어긋나는 순간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다.


이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다.


관계를 향한 내 방식이자,
내가 나를 지키는 태도다.

누군가는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나는 그 문장을
이렇게 바꾸어 해석한다.

"너를 대하는 방식으로 나를 알라."




내게 인간관계는
단지 '잘 지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끝없이 되묻는 거울이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끝내 지켜내는 검열 기준이다.


그래서 나는
말보다 결을 읽고,
표정보다 감정을 듣고,
의도보다 진심을 좇는다.


그 모든 섬세한 파동들 위에
나는 '나'라는 사람을 세운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너'와의 사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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