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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물처럼

가난하고 약한 자의 가치를 알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

by 삼선 윤일원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것은 물보다 더 쉬운 것도 없다(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其無以易之).” (노자 제78장)

알겠는가?

세상에 가난하고 약한 자를 보살펴주고 도와줘야 한다는 한 성인은 많았지만, 가난하고 약한 자의 가치를 알고 세상의 주인공이 되라고 한 자는 없다.

하늘에서 한 송이 눈이 내린다. 바람에 휘날려 이리저리 앞뒤 분간도 못하지만, 산정(山頂)에 올라 거대한 빙하를 만든다. 그렇게 수억 년을 잠들었다가 작은 물방울이 되어 아래로 흐른다.

나를 가로막는 자는 없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에도 스며든다. 그렇게 수억 년을 또 보내고 나니 바위에 물길이 난다. 내가 한 일은 오직 하나 기다림이다.




무릇 약함은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은 단단함을 이긴다. 사람은 물의 이치는 잘 알면서도 자신의 이치는 깨닫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조급함이다. 조급하면 머리를 잃는다(躁則失君). 머묾과 기다림이다. 하루 이틀 수억 년을 기다리면서 세를 모아 빈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요. 이것 보세요, 남들은 뛰어가잖아요? 머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죽은 목숨이에요. 불안하고요.”

그래 네 삶이 물처럼 무한이 길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아. 조금 늦게 출발한 것일 뿐 늦은 삶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하고 싶어? 너, 들소 알지. 한 놈이 면 다 뛰어. 꼴찌가 앞서가는 놈에게 물었어.

“왜 뛰어” “앞 놈이 뛰니까?” 또 앞 놈에게 물었어 “왜 뛰어” “앞 놈이 뛰니까?” 그렇게 맨 앞 놈까지 와서 물었지. “너, 왜 뛰어” “그냥”


걱정 마, 방향이 없는 삶이 더 불안해. 비교도 자극이 되지만 나를 갉아먹어. 넌 너, 난 나. 너가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잖아? 그러니 오랫동안 거울을 보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너 자신을 믿어. 왜? 불안하다고. 내가 나를 못 믿겠다고? 그래. 내가 나를 속이면 아무도 몰라 편안할지 몰라도 넌 알잖아, 아니라는 것을.

시골에 종숙(從叔) 한 분이 계셨어. 도회지로 나가 고위 공직에 오르면 뭘 해? 내가 너를 덜구지(무덤에 올라 꾹꾹 흙을 밟는 일) 하는데, 대처로 나가 돈을 많이 벌면 뭘 해? 내가 너를 덜구지 하는데. 그래. 오래 사는 것도 한 목표야. 뭐, 인생 별것 없더라.

그렇다. 옛말에 나라의 때(먼지나 더러운 것)를 잔뜩 뒤집어쓴 사람이 사직(社稷, 나라)의 주인이 되고, 나라의 상스럽지 못한 기운을 잔뜩 뒤집어쓴 사람이 하늘 아래 왕이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고? 언제나 마알간 자가 승리한다고? 그렇지 않다. 모험을 하지 않는 자는 잃을 게 없어 보여도 자신을 통째로 잃는다. 모든 것을 짊어진 자가 진짜배기다.

바른말은 언제나 거꾸로 들린다(正言若反). 왜냐하면 혼자 독차지 하고픈 심보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무슨 생존 비법, 인생 지침서, 50대에 읽어야 뭐뭐뭐?에 낚여서는 안 된다. 어디 모양이 같은 물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없다.



희미한 눈으로 바라보니 속박의 시절, 가난의 시절이 억울할 것 같았지만, 봄처럼 짧은 청춘이 그래도 최고였다. 아아, 바람처럼 자유롭게 물처럼 부드럽게 살고 싶다. 물처럼 아래로만 흘러 답답할 때 바람처럼 날아오르고, 바람처럼 떠돌아 허허로울 때 물처럼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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