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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 없는 어버이날

내 그리움이 정점에 달해 임계점을 넘는 날, 나도 자연으로 돌아갈

by 삼선 윤일원

벌써 두 번째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을 맞이하네. 어제는 사무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하는데 길거리에서 ‘카네이션’을 팔더군. 그랬더니, 실장님이 보리가 두 개씩이나 있는 카네이션을 사서 내 책상위에 두네. 그리고 기념사진도 찍고.

그리고 내가 이곳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 국방부에 있을 때는 자주 옥상에 올라갔었어. 남쪽 주한미군의 그림 같은 숲도 좋았지만, 전쟁기념관 너머 광화문, 인왕산, 남산, 북한산 스카이라인이 그렇게 좋았거든.

내가 서울서 이만한 풍경이 없다고 구로를 깔봤나 봐. 그런데 웬걸, 여기도 경치가 꽤 좋네. 저 멀리 남산과 북한산이 빌딩 너머에 있고 가까이에는 아까시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관악산과 수리산, 목동이 훤히 보여.



언제나 난 이런 감각에는 매우 예민하지만, 집 식구와 이야기, 특히 부모님과 대화에는 매우 무뎠지.

아주 전에는 국방부 구내 우체국으로 가서 카네이션을 시골로 배달시키고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고 그냥 전화로 혹은 돈으로 대신할 때가 많았어.

“네가 대신 달아 드려”

고향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동생한테나 아니면 가까이에 있는 큰 누님한테 이런 말 하는 것이 고작 전부였으니까.


집에 오니 큰 놈이 카네이션 두 송이를 사다가 놓았길래, 마누라가 배 깔고 한자(漢字) 쓰고 있는 나한테 주어 얼른 받았더니만 요즈음은 꽃다발 안에 물도 채워 넣나 봐, 무심결에 받았더니만, 홀라당 얼굴에 물을 뒤집어쓰니 다들 낄낄거리면서 웃고.


그래, 원래 난 뚱한 성격이라 “집에 들어오면 부처님이요, 나가면 영업사원이라” 별말이 없어 자주 이야기도 못 했는데, 여전히 지금도 할 이야기가 그리 많지는 않고. 그런데 참 신기하더라. 할 이야기가 없는데 가끔 이야기하려면 문득 상대가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닫곤 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좋은 이야기, 나쁜 이야기, 의미 있는 이야기, 의미 없는 이야기, 말 같은 이야기,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가 허공으로 퍼지면 좋으련만, 쉼 없는 대화가 일인칭으로 변해 자동 저장되는 것 같아.


이문재 시인의 「농담」에는 이런 문구가 있어.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아마, 나도 그런 천이(遷移)을 겪을 것 같아. 점점 강한 사람이 되었다가 진짜 외로운 사람으로. 그다음이 뭔 줄 알아? 그리운 사람이 되는 거.

내 일인칭 대화의 내용이 '내용'이 쌓이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그리움’으로 변해 그것만 남는 것 같아.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 내 그리움이 정점에 달해 임계점을 넘는 날, 나도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 그때 나는 ‘부처님’이 아니라 ‘영업사원’이 되어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할까? 그러고 싶네.

*사진은 모친 기일 고향 모습(202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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