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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품위' 꽃말인 이 나무를 그톡록 미워한 이유

예로부터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by 삼선 윤일원

어린이 없는 어린이날 자유분방에서 시작하여 비분강개로 요동을 치다가 역시 부국강병으로 이어진 어른 넷이 양양 낙산사를 휙 다녀오니, 갈 때는 청명한 날씨였는데 올 때는 빗방울이 떨어진다.

희끗희끗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짙푸른 소나무 숲 한 가운데에 아까시나무 한 그루가 솜사탕처럼 아이보리를 피우니 엄마 품에 곤히 잠든 아이처럼 여릿여릿 귀엽다.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1956년, 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의 「고향 땅」 동요다. 어린이가 불러야 하는 노랫말로서 서글픈 생각이 드나, 이 노래가 6·25전쟁 직후에 발표되었다면 “아하, 그렇구나”를 이해할 수 있다.



<천자문> 제45구, ‘孔懷兄弟 同氣連枝’라. 형과 아우는 서로 걱정하니, 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어라. 송이 송이마다 올망졸망 나란히 달린 모양이 아찔하도록 선명하니 어린 시절 그토록 천대받던 아까시나무꽃을 서울 한복판에서 보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으리오.

어릴 때 ‘아카시아’라고 알려진 이 아까시나무는 가시가 많고 번식력이 강해 잡목으로 취급되었다. 산은 말아간 정도로 헐벗고 집집이 올망졸망 자식은 많아 배고팠던 시절, 아무리 어려도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으니 땔감 구하는 일이다.

1964년 12월 중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전용기는 귀국길에 올랐다. 독일에서 광부를 만나 약소국의 서러움을 가지껏 느끼고 서울로 돌아오는 직항이 없어서 일본 경유 대한해협 포항 영일만 상공으로 들어온다. 대통령의 눈에 비친 영일만은 ‘뻘건 황무지’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1973년 시작된 치산녹화(治山綠化), “민둥산을 두고 조국 근대화는 없다”라는 통찰이다.

산림녹화의 가장 큰 적은 아궁이다. 가난할수록 추위와 배고픔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 아무리 두메라 해도 ‘산림감시원’이 저녁마다 돌아다니면서 아궁이를 검사했다. 행정권과 사법권을 동시에 가진 산림감시원의 위세는 그 옛날 고을 원님 못지않았다.


그때 유일하게 벨 수 있는 나무가 아까시나무다.


아까시나무는 1891년 일본이 독일영사관의 도움으로 처음 한반도에 들어왔다고 알려졌지만, 본격적으로 주목한 사람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우리보다 먼저 산림황폐화를 겪은 일본이 독일에서 산림과학을 배워 이 문제를 해결했기에 본능적으로 주목한 나무 또한 아까시나무다.


산에 나무가 자란다. 나무는 거대한 물주머니로서 가물지 않게 한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땅을 덮는다. 비가 온다. 낙엽이 직접 비를 막아 흙이 흘러내지 않도록 한다. 춥고 배고픈 농부가 낙엽을 긁어 아궁이에 불을 땐다. 산은 점점 흙이 씻겨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는 마사토(磨沙土)로 변한다.


“마사토에도 자라는 나무를 찾아라”


이 척박한 환경에 유일하게 자라는 나무가 아까시나무다. 겨울철 베어도 봄이면 싹이 다시 돋는다. 아무리 끈질긴 농부의 낫질에도 살아남는 나무, 질소 포집 능력이 좋아 다른 나무를 자라게 하는 나무, 꿀도 많아 양봉의 70%를 담당하는 나무, 산림녹화의 일등 공신의 나무, 꽃말이 우정, 품위인 이 나무, 이 나무를 그토록 미워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일본” 때문이다.


“예로부터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는다(貴以賤爲本, 高以下爲基)”라고 하지 않았던가? 베란다 창문을 여니 북한산 자락길 아까시나무 향이 달빛을 머금고 물밀듯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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