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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Aug 05. 2024

나 몽골 간대이

    

2024.8.2.     


참 많이도 바뀌었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직장에서 주어진 7월 말 8월 초가 되면 바리바리 싸 들고 미어터지는 길을 헤치면서 여름휴가를 갔었다.   

   

동해 해수욕장으로 가도 사람 구경이요, 북한산 사기막골로 가도 사람 구경이요, 몰래 숨겨 놓은 오지 인제 아침가리골로 가도 사람 구경이었다.     


그래도 떠났다.   

  

인간의 숙명이다. 목가적 자연적 시골을 떠나 콘크리트 속 인위적 인간이 겪어야만 하는 갇힌 자의 숙명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에 덫이 되어야만 얻을 수 있는 풍요, 그것은 묵은 달거리처럼 내뱉지 않으면 나를 갉아먹는다.     


그렇게 바리바리 짐을 싸니 15.2kg. 버리려고 떠나는 내가 싸 놓은 짐을 보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 된 나, 어차피 이 길을 택했다면 금요일 밤 12:00부터 울란바토르행 첫 비행기를 위해 노숙한다.     

몽골 울란바토르 KE197편 탑승 07:30, 벌써 길게 늘어선 줄이 굽이친다. 사전에 스마트 패스(SMART PASS) 앱에 입국 서류를 담아 놓으니 늘어선 줄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볍게 수백 명을 제치고 곧바로 보안검사와 출국 심사를 거친다.     



이번 여행 중 쓸 유심(USIM) 8GB를 사기 위해 CU로 가니 벌써 재고가 소진되었으며 2터미널에는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그 말을 곶이 곧이곧대로 믿을 내가 아니기에 다시 안내 데스크로 가 유심을 파는 서점을 찾아내 겨우 구매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면 언제나 창가 좌석에 앉는다. 낮게 내려앉은 도심을 벗어나 점점이 박힌 섬을 지나 구름 속으로 휙 들어가는 이놈. 분명 문명의 총아다. 어른 손바닥 서너 개 크기의 창틈으로 굽어보는 지상 세계, 이것이 인간이 그토록 원했던 신선들의 이상향이 아닌가? 맛깔스러운 기내식에 캔 맥주 한잔, “나 이제 떠나는 중이야” 하는 표식들 사이에 솜사탕 뭉게구름이 송이송이 수천 개로 나뉘어 초원 위에 흐트러질 때, 분명 나는 내몽골지역을 지나는 중이었다.     


첫 만남, 5박6일 동안 우리의 여행을 안내해 줄 가이드, 그녀(버기)는 울란바토르 한국어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체류 경험이 없는 여성분이다.    


 


오늘 몽골 도착 첫 음식으로 샤슬릭이 나왔다. 샤슬릭은 한국의 삼겹살만큼이나 유목민족이 즐겨 먹은 음식이다. 러시아어로 ‘꼬치에 꿴 것’을 뜻하지만, 기원은 튀르크(돌궐(突厥), 흉노의 후신)족에서 기원했다. 샤슬릭은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 고기뿐만 아니라 야채나 해산물 등을 잘게 썰어 양념에 재워 놓은 다음 꼬치에 꿰어 숯불에서 익히는 요리다.   

   

오호라, 그렇구나. 돌궐족의 기원은 몽골 위트켄산이니 이 음식이 저 멀리 초원을 돌고 돌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튀르키예(터키)로 이어지고, 다시 우리 일행의 첫 점심으로 떡 하니 놓이니 긴 역사 앞에 놓인 짧디짧은 인생이 얼마나 허망할뿐더러 소중한 것인지를 곁들여 나온 보드카가 없더라도 흥은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몽골 라마불교 총본산 간등사(간단테그치늘렌사)로 간다. 티벳고원의 산사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라마사원, 어찌하여 몽골은 티벳과 이리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가? 모두 칭기즈칸 때문이다. 

    

몽골 사회주의 국가 시절, 칭기즈칸은 금지어였다. 칭기즈칸을 언급하면 처벌받았다. 칭기즈칸의 이름조차 테무친으로 불리었고 그저 난폭한 살인마 지배자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고? 사회주의 국가 종주국 소련과 신흥 사회주의 국가 중국조차 몽골을 두려워한 역사의 DNA 때문이다. 

    

칭기즈칸은 금나라(청나라 만주족이 세운 나라)를 멸망시킨 후 송을 공략한다. 아무리 성을 공격하여 점령해도 곧바로 채워지는 군사력에 질려 전략을 바꾼다. 송의 핵심 세력인 한족과 이민족을 분리한다. 그 첫 번째가 세계 3대 초원이 있는 티벳이다. 그렇게 티벳을 복속시킨 후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여 하나의 나라가 된 다음 양쯔강을 따라 송(남송)의 허리를 두 동강 낸 다음 윈난성을 돌아 후방에서 쳐들어와 숨통을 끊어 놓았다. 

    

칭기즈칸은 10만 대군을 이끌고 호라즘 제국을 침공하기 전에 가족 쿠릴타이를 소집한다. 칭기즈칸이 가장 신임하는 몇몇 부하도 함께 참석한다. 만약에 칭기즈칸이 원정 중에 죽으면 대 칸의 후계자 자리를 논하는 자리다. 먼저 몽골 전통에 따라 맏이인 주치에게 발언권을 주어진다. 그러자 둘째인 차가타이가 형인 주치는 친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왕위 계승 자격이 없다고 반발한다. 몽골 전통에 따라 왕위 다툼을 벌인 두 형제는 칸의 승계에 제외되었고 셋째인 우구데이로 넘어간다. 

     

아버지인 칭기즈칸이 죽은 해에 맏아들 주치도 죽지만, 그의 후손들은 현재 모스크바 지역인 킵차크칸국을 200년 동안 다스려 슬라브 종족이 하나의 국가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늦은 저녁 불루스카이 호텔에 짐을 풀고 이국땅 첫 밤이 아까워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나가니 젊은 연인들이 칭기즈칸 동상 앞에서 한 여름밤을 즐기고 있다. 이국땅 여행객에게는 그들의 소리보다 간등사 윤장대의 삐걱대는 소리 너머 초원의 바람결에 흐트러지는 별빛조차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내일은 제2부, ‘문명의 길을 벗어나 흡수골로’로 이어지며, 이 기행문은 6일(7.27~8.1) 혜초여행사와 함께했습니다.


#몽골 #칭기즈칸 #샤슬릭 #간등사 #우구데이 #수부타이 #돌궐 #불루스카이 #혜초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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