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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Aug 12. 2024

내 하늘을 두 동강으로 일도양단하리라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는 번개가 연신 사이키 조명처럼

2024.8.12.


나는 흡수골에 도착하면 보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나는 하늘을 일도양단하여 두 동강 낸 다음 하늘빛 모양 그대로 땅에 투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만의 별을 찾아 쏟아지는 별밤을 만끽하는 것이다.


일도양단(一刀兩斷), 한칼에 두 동강 낸다. 사람에는 민간인 군인, 육사 비육사, 고시 비고시, 서울대 비서울대, 판검사 비판검사, 영남과 비영남, 이런 것 없다. 그냥 무식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뿐이다. 민간인이라서 유식하고, 육사라서 유식하고, 고시라고 유식하고, 서울대라서 유식하지 않다. 그냥 무식한 사람은 무식할 뿐이다.


내 본질을 짓누르고 있는 문명의 껍데기를 그냥 두 동강 내어 흡수골 깊은 심연에 처박아 영구 봉인하리라. 



칭기즈칸이 그랬다. 핏줄 NO, 종족 NO, 지연 NO, 그냥 무식한 놈과 그렇지 않은 놈으로 갈라, 그렇지 않은 놈을 데려다 썼다. 수부타이는 미천한 대장장이 출신이지만 그 어느 전사(戰史)에도 그를 능가하는 승리를 거둔 인물은 없다. 국가 대 국가 전면전 65회 65승, 32개 국가 정복, 비본질 요소인 이거 따지고 저거 따져 그렇게 인물을 등용하지 않았다. 능력 있으면 OK. 이것이 험한 초원을 살아가는 가장 단순한 방식이다.


우리가 묵을 캠핑장 토일럭트(Toilogt)에 도착하니 세 종류의 집이 기다리고 있다. 게르(Ger)와 오르츠(Orts) 그리고 현대식 목조 주택이다. 


게르는 몽골을 상징하며 몽골인의 정신이라 할 수 있으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하얀 둥근 원형 집이다. 여기서 묵는다.



집을 짓는 방법도 매우 간단하여 중앙에 ‘토노(Toono)’라 불리는 원형 틀을 높이 세운 다음, 우니(Uni)라 불리는 서까래를 방사형 모양으로 끼우고, 하나(Khana)라 불리는 접이식 나무 격자 틀을 빙 둘러 쳐주고, 양가죽으로 덮어씌우면 끝이다. 오르츠(Orts)는 게르보다 더 간단하여 나무를 원뿔형처럼 세운 다음 순록 가죽으로 덮으면 끝난다.


저녁을 먹고 나니 어둑어둑한 붉은 석양이 흡수골을 물들인 가운데 무지개가 둥그렇게 떴다. 밤 10시까지도 날이 훤하다. 백야(白夜)다. 하얀 밤, 어찌 이 밤을 축복하지 않으리오. 두 개의 호수가 나란히 붙어있는 전망대로 간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완벽한 일도양단, 하늘이 호수에 처박혀 지평선이 없다면 위가 아래요 아래가 위로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하늘이 너무 짙거나 호수가 맑지 않아서다. 호수가 거울처럼 투명해야 함은 물론 습기 없이 건조해야 그대로 copy(복사) & paste(붙이기)가 된다.




무언가를 느끼기보다는 기억하기를 더 좋아하는 우리, 느낌은 일회성이요 저장은 영구라지만, 느낌이 있어야 삭제되지 않고 남는 법, 연신 저장하려 셔터를 눌러 된다.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다.


우리 일행 16명의 평균 연령을 확 낮춘 정쌤팀 5명이 도착한다. 정쌤팀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역시 가장 먼저 반응한다. 푸른색 풍선 소파 두 개를 가져온다. 바람은 수동식이라 풍선 소파를 들고 바람처럼 달리기를 몇 번, 그제야 제법 부풀어 올라 누우니 별이 얼굴 위로 쏟아지는지고 지평선 멀리 날아온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무릉 대형 쇼핑몰에 장 봐온 맥주와 와인, 보드카를 흡수골에 쟁여놓는다. 


흡수골(Hovsgol, Khövsgöl)은 “큰물이 있는 호수”라는 뜻으로 튀르크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골(gol)은 호수를 뜻한다. 아흔 개의 강이 흘러 단 하나의 에긴골(Egiin Gol) 강으로 빠져 1,000km를 달린 다음 바이칼호로 흘러든다. 백두산 천지처럼 화산호로 최고 수심이 262m이다. 그러니 얼음처럼 차가울 수밖에.




평균 연령 30대 초반이 노는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얻으니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핸드폰으로 틀자고 한다. 돈 맥클라인의 <빈센트>와 드뷔시의 <달빛>, 김연지의 <위스키 온 더락>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나는 생뚱맞게 싱어게인3 5호의 <부산에 가면>를 튼다.


그제야 평균 연령 60대 초반 어른들이 어슬렁어슬렁 보드카 에덴(EDEN)을 들고 나온다. 먼저 나온 평균 연령 30대 초반조차 시간이 흐르자,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게르로 들어가 가져온 겨울옷을 몽땅 꺼내 입으니 그제야 코맹맹이 소리가 들리지 않다.


날이 더운 여름철 거대한 호수 위로 발생한 수증기는 먼 하늘 차가운 공기를 만나 수시로 비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몇 시간 전에 내린 비로 초원은 이슬을 잔뜩 머금었고,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는 번개가 연신 사이키 조명처럼 번쩍이는데 천둥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갑자기 검은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열리더니 별이 쏟아진다.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 ‘별자리’ 앱을 깔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북극성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은하수가 비스듬히 서쪽에서 북동쪽 하늘로 비켜 호숫가에 내려앉는다. 


오호라 새벽이 되면 흡수골에서 처박힌 은하수를 보겠군. 수시로 지나가는 인공위성과 더불어 간간이 떨어지는 별똥별 사이로 ‘은하철도 999’가 기차 8량을 달고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쫑쫑 지나간다. 아뿔싸! 이게 뭐지?



#몽골여행 #흡수골 #혜초여행사 #은하철도999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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