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선 윤일원 Aug 23. 2024

혐오로 위장된 두려움

2024.8.23.


날이 참 덥다. 118년 만에 가장 더운 여름철이라는 기록과 함께 열대야를 가장 많이 갖는 해가 되었다. 태풍 종다리가 물러난 자리에 덥고 습한 공기가 머물러 한증막이 따로 없다. 


날이 습하고 더우면 집 안 구석구석 어둡고 습한 후미진 곳에서 쥐며느리, 좀벌레, 곱등이, 공벌레, 노래기, 돈벌레(집 지네)가 기어 나올 법도 한데 전혀 그럴 기미가 없으니, 날이 더워서 이들 벌레조차 번식이 어렵다는 방증이다.


보기만 해도 징그러워 해충으로 취급하지만, 이 중에 해충으로 취급받는 벌레는 좀벌레밖에 없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책이나 옷, 종이를 갉아 먹어 해충 취급 받는다. 


거미 같은 긴 발이 숭숭 달린 돈벌레(집지네)는 오히려 집 안 해충인 바퀴벌레, 개미, 거미, 파리 등을 잡아먹는 포식자로 유익한 곤충이며, 지네 같은 검은 절지동물인 노래기는 썩은 식물과 유기물을 먹으며, 자연의 분해자로서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이런 벌레를 보면 기겁하는 이유는 진화 과정에 인간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채택된 위험회피전략에 기원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이들과 유사한 벌레로부터 온갖 독이나 질병에 시달려 생존에 심각한 위협을 받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혐오는 특정 개체가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에 그 특징이 있다. 본능적 방어기제로서 출발한 혐오가 인간이기에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발전한다.


가장 대표적 혐오가 인종차별이다. 인종을 판단하는 시각 기능은 피부색, 머리카락, 생김새, 체형 만 보고도 0.001초 안에 벌써 자신만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만들어지고, 애써 사유하지 않으면서 편견의 그물에서 탈출할 수 없게 된다. 다음 단계로 남녀의 성적 차별이다. “왜 저렇게 늦게 가?”하면 벌써 장롱 면허증 아줌마를 생각하는 것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딱 봐도 아는 해충식별에 실패했다면 인종차별과 남녀성적 차별에 벗어나는 것에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한 번 각인되면 그다음 단계로 진화는 너무 쉬워 나와 같은 내부 집단과 나와 다른 외부 집단을 가른 다음 외부 집단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유럽의 대항해 시절, 백인 종족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열등 종족으로 취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혹여 내부 집단으로 편입된 아프리카계 흑인조차 외부 집단을 향한 잔혹한 행위를 보면, 내부 집단에는 더없이 관대하지만, 외부 집단에는 한없이 사악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여기까지 사회적으로 진화한 인간은 정치적 진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념'이다. 내가 믿고 따르는 이념이 신념이 되어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정당에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처럼 우리에게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있다. 이런 심리를 훤히 꿰뚫는 정치 집단은 혐오 정치를 부추겨 세상에 원수는 이런 원쑤가 없도록 만든다. 




밥상을 엎어야 상호 비난이 중지되고 단톡방을 빠져나와야 토론이 중지되지만, 혐오는 여전히 살아 숨 쉬면서 또 다른 공격포인트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병법에 이런 말 있지, 너는 주인이 되지 말고 객이 되어라. 한 치 전진하면 한 척 후퇴하라(用兵有言 吾不敢爲主而爲客 不敢進寸而退尺).” (<노자> 제69장)


노자의 일갈이다. 어리석은 백성들이여,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내가 주인이 아니라 객이 되어 내 목숨을 남에게 맡겨라. 그러면 혐오 아래 숨겨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적이 한 발 진격하면 나는 두 발 후퇴하라. 앞보다 뒤요, 먼저보다 나중이요, 위보다 아래로다.


언뜻 진화와 다른 듯한 행위에 진리가 숨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해충도 구별도 못 하는 해충만도 못한 존재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진화 #혐오감 #내집단외집단 #해충 #인종차별 #성적차별 #편견 #선입견 #정치적신념


작가의 이전글 인간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할 때 절망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