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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선 윤일원 Aug 22. 2024

인간은 가짜가 진짜로 둔갑할 때 절망한다


소설 「홍루몽(紅樓夢)」은 청(淸) 건륭(乾隆) 황제 때 지어졌다. 어렸을 때는 그저 그런 몽환적 애정 소설 정도로만 여겼던 책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시점 때문이다.


그 시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 그것도 경서(經書)로 엄격히 통제 받았던 책이 아니라 소설 형식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을 암호처럼 녹여 후세에 다시 들춰보게 했다.


건륭황제는 강건성세(康乾盛世)의 120년 태평성대의 마지막 황제이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 시대는 대 변곡점의 시대로 중국이나 조선은 다가오는 외세 즉 서양의 흐름을 놓치게 된다. 농경 제국 중의 대미를 가장 활활 태운 마지막 황제이기에 묘미가 여기에 있다.



그가 우둔한 황제였다면 세상은 그리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는 영민하기 이를 데 없어 할아버지 강희제에게 일찍부터 황제의 자리에 내정된 인물이다. 그가 “세상의 흐름”을 놓쳤다는 것에 더 커다란 분노와 애틋함이 녹아 있다.


「홍루몽(紅樓夢)」은 그런 분노와 애틋함을 한 가문의 흥망성쇠와 남녀 사랑으로 위장하였기에 그 어마무시한 문화혁명 때도 살아남은 야시시한 빨간 책이 되었다.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은 <노자>의 이상향인 태허환경(太虛幻鏡)으로 들어갈 때 양 기둥 주렴 쓴 글을 보게 된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 진짜 역시 가짜로 되며, 없는 것이 있는 곳으로 되없는 곳 또한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지금 우리 나라 세태를 알고 쓰기라도 한 듯 똑 맞는 구절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화려한 시절이 가장 슬프듯이 국가의 흥망성쇠 중에서 쇠락할 때 가장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때 나타나는 현상이 물장즉노(物壯則老), (壯)이 주는 화려함이며, 가짜가 진짜처럼 행세하며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둔갑한다.


모두 현란한 이념의 거품 속에서 서로가 휘황찬란한 언어로 권력의 다툼이 절정을 달할 때 내부의 모순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지금 우리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다. 저출산, 저성장에서 새로운 파괴적 기술은 스멀스멀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우리가 벼랑 끝에 직면할 때 추락하거나 날거나 두 길 밖에 없다.


늘 오지 않는 영웅을 기대하면서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영웅이 되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 이념의 거품을 터뜨리는 데는 실용의 바늘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그렇지 않은가?


#이념허구 #저출산저성장 #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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