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쌍계사 국사암 요사채, 전국에 찾아온 자칭 도사들이 우글거리며 입심이 좋다는 그들에게 전해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꼬부랑 할매가 봉정암으로 기도드리려 가는 디, 괴나리봇짐에 공양 쌀 몇 되박을 지고 산길 30리 올라가야 하는 디, 쌍폭에 이르면 허리가 반쯤 펴지고, 깔딱 고개를 지나 봉정암에 이르면 허리가 곧게 펴지고, 밤새 철야 기도를 하는 디, 신명이 난 할매가 방방 날기를 법당 천장에 닿았다”는 전설이다.
이 정도는 애교다. 우리나라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집 할매가 죽기 전에 꼭 한번 봉정암에 가고 싶다고 하여 헬기까지 대절했는 디 주지 스님이 거절했다는 둥, 절대권력자 안방마님의 어머님이 봉정암 중창 불사를 위해 1개 사단 병력을 동원했다는 둥, 수없이 많은 야사와 전설을 간직한 곳, 이곳은 해발 1,248m, 적멸보궁이 있는 봉정암이다.
봉정암은 대청-중청-소청으로 이어지는 대간에서 살짝 방향을 내설악으로 틀어 용아장성, 용 꼬리에서 시작한 산세가 등뼈를 타고 올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위치에 적멸보궁이 있고, 날카로운 송곳니 8개가 삥 둘러쳐진 곳에 봉정암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길을 떠난다. 잠시 잠깐 산보하듯 얼른 갔다 오기도 하고, 좀 멀리 떠나기도 하고, 영영 안 돌아올 듯 떠나기도 한다.
모두 마음의 무게에 따라 달라진다. 지치고 힘든 마음, 고단하고 피곤한 마음, 일상의 권태에 짓눌려 숨조차 역겨울 때, 그때는 산보가 아니라 치유의 길을 떠나야 한다.
내게 치유의 길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새말 나들목에서 비행기재 타고 정선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봉정암 가는 길이다. 이제 정선 가는 길은 포기했다. 꼬불꼬불 오장육부가 뒤틀리듯 들어가는 42번 국도가 반들반들 고속도로가 되면서 단풍 향 짙은 숲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봉정암 가는 길이다.
허겁지겁 쫓기듯 2호선을 타고 강변역에서 내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너덜너덜 해진 마음이 쉬 가라앉기에는 2시간의 낯선 풍경으로는 부족하다.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서 버스를 타고 백담사에 이른다. 다리 건너 만해의 ‘님의 침묵’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계곡을 따라 타박타박 걷는다. 숲길이 좋다. 동네 뒷산 같은 흙길에 나무가 쭉쭉 뻗고 빼곡 숲 향이 잔뜩 밀려온다. 붉어 시리도록 아픈 단풍이 계곡물을 따라 줄줄 흐르고, 가장자리 곳곳에 쌓아 올린 작은 돌탑에 수없이 많은 생각을 묻어두면, 점점이 깎아 지른 협곡 사이에 영시암이 나온다.
예전에는 국수 공양을 하였지만, 이제는 쇠락한 듯 쓸쓸한 잡초 사이로 간간이 핀 화초를 보면 “아아, 오늘 주지 스님이 산문을 닫고 흰 구름 따라 어느 계곡으로 떠났느뇨?” 할 뿐이다.
이제 길은 금강송 우거진 소나무와 떡갈나무, 아름드리 전나무를 지나면 오세암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만해 스님이 깨친 절 오세암, 엄동설한 주지 스님이 쌀이 떨어져 잠시 잠깐 탁발하러 떠날 때 홀로 남겨진 동자승, 잠시 잠깐 탁발일 줄 알았더니만 그새 폭설이 내려 석 달 열흘 만에 암자를 찾으니, 동자승은 주지 스님을 방금 기다리는 듯 따뜻한 부엌 칸에서 해탈하여 부처님이 되었다는 곳, 오세암(五歲庵)이다.
오세암을 비켜 다시 계곡을 따라 걸으면 대피소가 나온다. 30리길, 첫 시오리 길을 왔다. 마음이 고달플 때면 지치지도 않는다. 숨도 헐떡이지 않는다. 그냥 직진뿐이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잠시 잠깐 휴식으로 서늘한 한기가 온몸을 타고 흐를 때, 그때야 “오호라, 내가 봉정암에 가는구나!”를 깨닫고 심호흡한다.
터벅터벅, 계곡은 서서히 고도를 높이고 나를 붙들어 맺던 생각들도 헉헉대는 숨소리에 따라 하나둘씩 떨어져 나갈 무렵 쌍폭에 이른다. 양 갈래로 폭포가 쏟아지고 시퍼런 소가 발아래 까마득하게 보일 무렵에야, 봉정암이 코 밑에 왔다는 것을 안다.
계곡물이 바위틈으로 사라지고 물소리가 점점 희미해질 무렵, 드디어 깔딱 고개를 마주한다. 수직 험한 돌길을 오르고 또 올라도 머리 위에는 여전히 길이 또 있다. 그래도 오른다. 한발 두발 “얼마면 돼?” 하는 기대치를 포기하고 또 포기하고, 이제는 오장육부 노오란 토사물마저 다 게여 낼 무렵에야 고개 정상에 이른다.
그때 뒤돌아본 하늘은 파란 물결이라면, “나, 해탈한 거 맞지” 한다. 일주문을 지나 공양간에서 마주한 ‘미역국 한 사발’ 쫄쫄 굶다시피 서울을 떠난 나그네에게는 이 한 끼 공양만으로도 그토록 지겹게 달라붙던 권태를 사라지게 하고, 그토록 지치게 했던 타인의 시선조차 사치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