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떨어지자 드디어 전쟁을 끝낼 수밖에
2024.8.28.
김동인 소설 <감자>의 ‘복녀’는 칠성문 밖 채마밭에서 감자(고구마)를 서리하다 왕서방한테 들키는 바람에 그의 성 노리개가 된다.
많은 평론가는 인간의 도덕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알 수 있는 명작이라 하지만, 나는 나라가 백성에게 가난을 물려주면 백성이 어떻게 타락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사람은 죽어야 변하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이며 감자다. 감자는 줄기 식물이라 땅속에서 자란다. 땅속줄기 식물 중, 더덕, 도라지, 토란, 당근 등도 있지만 대부분 독성이 강하여 주식이 아닌 반찬으로 사용된다.
오늘날 감자는 ‘프랑스’를 요리의 종주국으로 만들어 올린 식재다. 아아, 프렌치프라이(French Fries)여, 햄버거와 콜라, 인간이 만든 음식 조합 중 최고의 궁합, 감자가 이 지위에 오르기까지 가난과 혐오, 전쟁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다.
1545년, 신대륙을 지배한 스페인은 은을 주화로 사용했기에 신들린 듯 신대륙을 샅샅이 뒤져 드디어 해발 4,090m 볼리비아 포토시(Potosí)에서 은을 발견하고 채굴한다. 인간의 한계점일뿐더러 식물의 한계점 위 고도다.
그러던 어느날(1550) 스페인 군대는 안데스산맥 페루에서 감자를 발견한다. 감자는 페루에서조차 2등급 식품으로 페루 바깥을 넘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포토시 광부들에게는 감자가 주식이었다. 광부들 따라다니는 감자, 감자는 자연스럽게 광부의 음식, 노예의 음식이 되었다.
1600년 직전, 스페인의 무적함대 소속의 한 척이 난파되어 아일랜드에 밀려왔다. 거기에 감자가 실려 있었다. 영국은 아일랜드 침략하고 식민지화한다. 식민지 안정화가 필요했던 영국군은 주기적으로 저항하는 지역을 초토화하여 보리, 밀은 말할 것도 없고 곡식 창고, 가축까지 모조리 도륙했다. 이 과정에서 미덕을 보인 식량이 감자였다. 아무리 태워도 땅 밑까지는 태울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유럽 땅을 처음 밟은 감자는 무엇이든 희소성은 최음제로 둔갑하는 미신에 따라 귀족들의 곁 요리로 둔갑하여 약초와 함께 정원에서만 길러졌다.
영국 신사들은 감자 먹기를 과감하게 거부했다. 감자는 돼지의 식량이요, 짐승처럼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아일랜드의 식량이요, 무엇보다도 가난한 ‘노동자’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귀족은 ‘흰 빵’만을 먹을 권리가 있었으니 언감생심, 어찌 감자를 먹을 수 있으리오.
1778년 7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 전쟁이 발생했다. 지금의 뮌헨 근처로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서두른 전쟁만큼이나 전쟁 당사국인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군용 식량으로 감자에만 의존했고, 감자가 떨어지자 드디어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전쟁을 감자 전쟁(potato war)이라 불렀다.
16세기 중반, 필리핀에 신대륙에서 온 후질구레 한 스페인 사람이 한 포대기의 감자를 싣고 왔다. 장삿거리가 되면 무엇이든 싣고 다니는 왕서방은 감자를 싣고 양쯔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은 감자가 척박한 고원지대에도 잘 자란다는 것을 금세 알았기 때문이다. 청나라는 자국의 영토를 3배로 늘렸고 감자가 들어 오자 인구마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이는 또 다른 빈곤을 초래하여 제국의 몰락을 재촉한다.
1763년,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간 조엄은 동방의 고요한 나라 조선에 고구마(甘藷, 단 마)를 가져왔지만, 점잖은 조선인은 먹지 않았다. 한편 감자는 돌고 돌아 청나라로부터 들어와 척박한 함경도 지방부터 들어왔지만, 여전히 먹지 않았다.
1914년 8월, 세계 1차 대전 중 일본은 중국의 독일 조차지 칭다오를 공격하면서 독일인 포로 5,000명을 잡아 온다. 이들 중 독일에서 농업대학을 졸업한 이가 홋카이도에 남아 감자를 연구하였고, 일본 아이치산업회사는 조선 땅 강원도에 감자를 본격적으로 심으면서, 강원도 사람을 ‘감자바우’로 만든다.
오호라, 신대륙 포토시(Potosí)에서 은이 발견되어 스페인을 먹여 살렸듯이, 훗날 1970년대 강원도 태백에 한강의 기적 검은 석탄을 발견하니, 감자는 어디서나 광부의 첫 주식(主食)이 되었다.
오늘날 감자가 세계 2위 식품이다. 주된 이유는 생존성이다. 모든 작물을 죽게 하는 서리에도 잘 견디며, 높은 고도에서도 잘 자라며, 척박한 돌무지 땅에서도 잘 자라면서도, 쌀이나 밀보다도 단위 면적당 산출 열량도 많고, 거기에다 맛은 물론 비타민 함유량이 많으며, 더구나 추가 노동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심기만 하면 되며, 마지막으로 보관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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