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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탄핵한 소년, 가혹한 칼잡이가 되다.

by 삼선 윤일원

쥐를 탄핵한 소년, 가혹한 칼잡이가 되다.


2025.10.17.


한무제 때 장탕(長湯, ?~ BC 116)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마천에 의해 가혹한 관리라는 뜻으로 ‘혹리(酷吏)’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당했고, 현대에 와서는 법을 가장한 도적의 무리라는 뜻으로 ‘법비(法匪)’의 반열에 올랐지만, 한무제를 도와 부국강병을 추구한 제도의 ‘칼잡이’로도 통한다.


어느 날 아버지가 외출하면서 어린 장탕에게 집을 보게 한다. 아버지가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쥐가 고기를 훔쳐 간 것을 알고 대로하여 장탕을 매질한다.


이에 장탕은 쥐구멍을 파 훔친 고기와 먹다 남은 고깃덩이를 찾아내 증거를 보존한 다음 쥐를 체포하여 구금한 후, 대청 아래 법정을 세운 다음 정식으로 논고하는 절차를 밟아 영장을 발부하고 판결문을 작성 후 ‘책형(磔刑, 몸뚱이로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해 당당하게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였다.


훗날 장탕은 세 장사(주매신, 왕조, 변통)의 모함을 받자, 한무제가 차마 총애하는 신하를 법정에 세울 수 없어 스스로 결단 내리기를 원하자, “신 장탕은 한 자 한 치의 공로도 없이 도필리*에서 삼공(三公, 승상의 반열)의 지위에 올랐지만, 신을 모함하여 죄를 씌우려는 자는 저 세 장사입니다.” 하면서 결백을 주장하고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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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자식과 형제들이 그래도 삼공의 직위라 후하게 장례를 치르러 하자, 그 어미가 말하기를 “장탕은 천자의 대신으로 있다가 추악한 말을 듣고 죽었는데 어찌 장사를 후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하면서, 소달구지에 시신을 옮겨 실은 다음 외관(外棺)도 없는 홑 관만으로 장사를 치렀다.


한무제가 이 소식을 듣고 장탕의 집을 압수 수색해 보니 집 재산이 겨우 500금밖에 없었고, 그것도 모두 봉록이나 하사금일 뿐 다른 이권 개입이 없는 것을 알고, “이런 어머니가 아니고는 이런 아들을 낳을 수 없다”라고 하면서 모함을 한 세 명을 주살하니, 이에 가담한 승상 장청적(莊靑翟)은 자살하고, 측근인 전신(田信)은 풀어줬다.


작년부터 시작된 사법부의 수난 시대,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는 글자 하나 다르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법의 지배는 통치자나 일반 시민이 모두 똑같은 법의 심판대에 서지만, 법에 의한 지배는 통치자가 처벌을 원하면 바늘 끝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구속시키고, 통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느슨하게 적용하여 석방한다.


이에 사마천이 <혹리열전> 서문에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적은 많아진다”면서, “법령이란 다스림의 도구일 뿐 맑고 탁함을 다스리는 근원은 아니다”라고 일갈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의 ‘생산성 향상’ 없는’ 통치는 말짱 도루묵이라 뜻이다.


*내일은 ‘황제의 입맛에 따라 법을 집행한 법비 장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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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필리(刀筆吏): 형벌(刑罰)과 소송(訴訟)을 다룬 9급 말단 공무원이지만, 훗날 ‘글자’ 하나로 시비를 바꾸고, 증거를 날조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등 하나로 사람 생명도 해치고, 막대한 이권을 삼키는 등 악행으로 유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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