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리열전 <장탕편>
부국강병의 칼날을 휘두르다 되치기에 당한 장탕
2025.10.19.
아무리 강력한 쇠뇌도 끝에는 얇은 비단조차 뚫을 수 없고, 아무리 강한 회오리바람도 끝에는 기러기 털조차 날릴 수 없다.
한무제는 영토 팽창을 끊임없이 한 결과 재정 악화를 가져왔고, 결국 국고를 텅 비게 만든다. 아자 카드는 “정규군 1%의 룰이 어긋나면 제국은 비틀거린다"고 경고했다.
그는 인류 문명사인 로마, 에스파냐,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등 제국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분석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는데, “그 나라 인구 1%를 정규군으로 보유하는 일은 언제나 힘겨운 일”이었다고 하면서, “결국 1% 이상 웃돌 경우 제국은 붕괴한다”라는 법칙을 발견한다.
장탕은 한무제의 뜻에 따라 돈(錢)의 백금(白金) 농도를 줄여 주석을 섞은 ‘오수전(五銖錢)’을 발행했고, 부유한 상인이 갖고 있는 소금과 철을 국가의 ‘전매’로 만들었으며, 고민령(告緡令, 숨겨진 재산을 고발하면 신고한 자와 국가가 절반을 나누는 법)을 발행하여 호족이나 제후의 토지를 국고로 환속시켰다.
하지만, 국가의 수입 창출은 백성의 ‘생산성’에 있지, 국가가 백성의 부를 빼앗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즉 대규모 간척 사업이나 농수로 확충, 새로운 상공업의 발달로 이웃 나라와 무역 없이는 결국 백성들의 원성만 자아낼 뿐 성공할 수 없다.
산업의 발달로 새로운 부의 계층 탄생 없이 인위적인 부의 재편성은 결국 백성의 소요 사태를 불러오고, 간악한 관리들은 개혁을 빌미로 이권에 개입하여 착복하기에 이르자, 결국 그 원성은 장탕에게 돌아갔다.
드디어 정적들이 장탕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가장 앞장선 사람은 조나라 왕이었다. 조나라는 야금과 제철산업이 주 수입원이었으나, 번번이 장탕에 제지를 당하자 원한이 가득했다. 그들은 장탕의 뒷조사를 한 결과 말단 부하 ‘노알거’라는 사람을 지극히 아껴 병이 들면 찾아가 다리를 주물러 주는 등 뭔가 ‘수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건만으로 장탕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인지라, 때맞추어 할아버지 효문제의 능이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능 관리는 오로지 승상의 책임인지라 무제는 어사대부(현 검찰총장 겸 법무부 장관)인 장탕에게 이 사건을 맡기게 되고, 장탕은 견지법(見知法, 다른 사람의 범죄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똑같은 죄로 간주하여 처벌)을 적용하여 문초하려 하자, 승상 밑에 있던 세 명(주매신, 왕조, 변통)이 역으로 “장탕이 사사로이 매점 매석하여 큰 이익을 보았다”고 밀고하면서, 한무제는 개혁 책임자인 장탕이 오히려 개혁을 방해했다고 분노하면서 ‘스스로 결단’ 하기를 원하자, 결국 “결백하다”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자결한다.
이에 한무제가 장탕 집을 압수수색 했으나 전 재산이 겨우 500금밖에 없는 것을 알게 되고, 때늦은 후회를 하면서 그의 아들 장안세(長安世)를 중용한다.
나는 이글 <혹리열전> ‘장탕편’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일생이 처음부터 올곧게 나아간다거나 처음부터 어긋나게 악의 소굴로 들어가지 않음을 알았다.
대다수 사람은 갈지(之)자 행보를 하면서 “오락가락 왔다 갔다” 한다. 장탕도 처음에는 자기가 감옥에서 빼준 주양후(周陽侯) 전승을 발판으로 인맥을 쌓아 승승장구하려 했고, 행여나 도움이 될까 봐 부유한 상인인 전갑이나 어옹숙과 어울려 다녔으며, 구경(九卿)의 지위에 오르자 천하의 선비들과 대부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또한 어사대부의 지위에 이르자 교묘한 법을 적용하여 정적을 제거하고 승상마저 무력화하여 국정을 전횡하게 된다.
어떤 한 사람을 평가하여 “그 사람 나빠”하는 것은 오류중 오류다. 가령 “그 사람 나빠”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나빠”하고 꼭 집어 말하지 않으면, 날마다 싸움박질만 하게 되는 이치다.
*사진은 감홍시
#사기열전
#혹리열전
#장탕
#부국강병
#아자가트
#1%황금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