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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홍 Oct 24. 2024

슬픔이 차오를 때

망설임 없이 나를 소환하기를



에너지가 넘쳐흘러 달리는 것이 아니다.

체력이 나쁘진 않지만, 아이 둘을 낳은 몸이고, 술을 좋아한다. 다행히 담배는 하지 않는다.

일에 치여 살진 않지만 가끔 용돈 벌이로 몸 쓰는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있고 싶다. 집안 살림이라는 게 늘 내 손을 필요로 하고 그것보다 마음 써야 하는 일들이 많다.

매일 바쁘지만 활기차게 무언가를 하는 경우보다 물 흐르듯 내 할 일들을 하는 때가 더욱 많다.


가을, 환절기 타는 나라 요즘은 곧잘 가라앉는다.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때로 슬픔이 차오를 때, 나는 곧잘 달리러 기어나간다.

축 늘어져서 슬픔에 가라앉기보다 슬픔을 떨구려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순간 잊고, 달리며 다시 생각나기도 하지만 내가 달린 거리만큼은 멀어져 있다.

악을 쓰는 인생. 악바리지 못해서 무언갈 완성도 있게 해내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 내고자 한다.

삶의 어느 지점에선 나의 그늘이 넓어지기를 소원한다. 


나의 에너지를 빛 삼아 어둠을 밝히는 그대들에게 조그만 온기 전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내 안의 에너지를 키워내는 힘, 그것이 달리기라는 것을 안다.


힘을 주기 위해 힘을 내서 달린다.


우리 모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다." _릴케
관심이란 무엇보다도 서로가 통하려는 작용이다.

ㅡ아티스트웨이


눈물겹도록 행복한 나날들의 연속이어도 아깝지 않을

삶의 언덕 위에 둔 게 언제라고,

툭~ 하고

언덕아래로 밀어버리는

장난 같은 인생.

꽃잎희망이 될까.

겹겹이 수술을 감싸는 꽃잎을 펼치라고,

그 안에 가두는 것일까.


그 어둠에서

얼마나 화려한 꽃을 꽃피우라고.

이토록 무성한 풀숲에 던져놓았을까.

나는 네 몽우리가 보이는데,

너는 꽃잎에 갇혀

볕이 드는 줄도 모를까 봐.

"자라거라, 자라거라"

밤새 속삭인다.


꽃을 피우는 건 슬픈 일이다.

내 안의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한 장 한 장 꽃잎 펼치는 사이,

시듦을 준비해야 하고,

새와 나비에게 꽃물을 빼앗기고,

바람에

겨우 피워낸 꽃잎을 지켜내지도 못한 채

화려한 짧은 생을

잠깐 살다 떨궈지는

너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생이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때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내 삶에 있어서도 축복과 같은 일이다.

머뭇거림 없이,

단번에.

눈물겹도록 행복한 날에도,

겹겹이 슬픔에 둘러싸인 날에도,

니 옆에 내가 꼭 함께 있어줄게.

망설임 없이.

나를 소환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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