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영화나 책이 일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흔치 않다. 보고 나서, 혹은 보는 과정에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고 그칠 뿐, 며칠이면 잊히고 또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된다. 그럼에도 이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라는 영화는 보는 동안의 감정 변화를 지나서 마음에 큰 자국으로 남았다.
영화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히라야마 씨의 일상을 다룬다. 그의 일상은 매일 반복되는 루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일상이란 이런 것이다.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양치를 한다. 키우는 식물에게 물을 준 다음, 유니폼을 입고 일을 나간다. 차를 타기 전에 어떤 큰 결심이라도 필요한 것처럼 집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아 마신다. 출근길에는 자신이 모은 테이프 컬렉션 속에서 올드 팝송을 골라서 듣는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가 웃음 짓는 일은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을 것인가?" 하며 고민하는 일이다.
그는 사람들이 기피하는 청소 일을 아주 열심히 한다.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대의 임무인 것처럼. 안 보이는 곳에는 돋보기를 갖다 대며 닦고, 도구를 직접 만들어서 청소를 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도쿄의 다양한 화장실을 보여주는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람이 들어가면 문이 투명에서 불투명으로 바뀌는 화장실은 마치 기발한 발명품을 보는 듯하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장면이 그렇게 지저분하지는 않은데도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드디어 점심시간! 휴우... 묘하게 편안해진다. 주인공이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올려다보는 나뭇가지들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그것을 보는 나도 편안함을 넘어 환희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면서 필름 카메라를 들어서 사진을 찍는 주인공. 일상에 잠시 스치는 빛을 사진 속에 담고 싶어 하는 행위가 아름답다.
일이 끝나면 그는 집에 유니폼을 벗어 놓고 목욕탕으로 향한다.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 온탕에 들어가 얼굴을 반쯤 넣었다가 빼는 일을 반복하는 중년의 아저씨에게서 어린아이가 느껴진다. 목욕을 마친 후에는 단골집에 가서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집에 와서는 한 손에 잡히는 얇은 에세이집을 읽다가 잠에 든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보컬, 루 리드의 'Perfect Day'라는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노래가 등장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좋아하는 올드팝송을 어떤 이가 함께 좋아하고, 그 가치를 알아주었을 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퍼지고, 그 설레는 마음이 화면을 뚫고 전달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누군가 있다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쩌면 이 영화는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실제로 주인공이 하는 대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고요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고,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앞서 말한 것처럼 자극을 넘어 자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일상은 소중하고,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 번 웃을 일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Perfect 하지 아니한가.
https://youtu.be/k4K8sLv0oyg?si=LsSepxfxcTt_hgz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