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각자의 우산에 책임이 있다.
출근길에 운 좋게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햇살이 비치는 것을 창문 통해 보다가 우산 하나를 발견했다. 손잡이는 살짝 낡았고 청록색과 보라색, 베이지가 섞여 있는 내가 좋아하는 색 조합의 우산. 어떻게든 내가 이 우산을 만난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지난 대화.
a: "우산을 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 뭔지 알아?"
b: "그게 뭔데?"
a: "지하철이나 버스에 놓고 내리는 거래."
b: "일부러 놓고 온다고?"
a: "응, 우산은 분리수거하기도 어렵고, 종량제 봉투에 넣기엔 크니까.."
b: "그렇구나. 그러니까 버려진 우산은, 누군가 잃어버린 게 아니라 일부러 두고 간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만히 놓인 우산의 신세가 처량해 보였다.
버려진 우산을 보면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도 마치 동물을 우산처럼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틀간 나는 한 마리의 유기견 사진을 보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입양 공고 기간이 끝나서 10일 뒤에 안락사를 앞두고 있는 강아지였다. 어차피 책임지지 못할 생명, 보면서 마음 아파하면 무엇하나 싶어서 외면하기를 여러 번이었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쓰였다. 겁이 많고 잔뜩 움츠린 모습이 지금 키우는 뚱자와도 닮아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도 강아지를 매일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또 다른 생명을 책임질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입양 신청서를 완성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이유보다 할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았다.
입양 신청서를 쓰기 전에는 다섯 가지 필독 사항에 동의를 해야 한다. 그것은 매우 기본적이면서도 무거운 것들이라 하나라도 마음에 걸리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려 동물을 입양하겠다는 큰 결정 이후에 삶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강아지를 무서워하던 내가 강아지에게 위로받고, 말 못 하는 동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된 것처럼. 유기견 한 마리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나보다 동물구조 관리협회야말로 말도 못 하게 힘든 경우가 많겠지만, 그렇기에 입양으로 열리는 긍정적인 세상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동물을 버리는 사람들은 그들을 다른 곳에 보내기보다는 그냥 버리는 것이 쉬워서, 그렇게 동물을 우산을 버리듯 유기한 것일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면서 생명을 끊을 권리는 어떻게 인간이 가지게 된 걸까?
우리 모두는 자신의 우산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것이 생명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다행히 한 분이 입양 신청서를 작성하셨고 다음 주에 강아지를 데리러 가기로 하셨단다. 하지만 본인도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 입양처를 찾을 수 있게 기도해 달라는 말을 남기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간절히 바란다. 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면, 미래엔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 그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라 믿고 그때까지는 마음에 품고 있을 수밖에 없어서 아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