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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issing you 06화

성장은 멈춤에서 일어난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잠시 멈춰보자.

by 윤영

버려진 원단을 다시 쓰는 것에 관심이 있다. 폐현수막을 재활용하는 가방 브랜드인 '누깍'이나 재활용된 플라스틱을 녹여 신발끈을 만드는 신발 브랜드 '올버즈'가 흥미로웠던 것도 그런 이유다. 사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쓰이지 않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에 마음이 간다. 언젠가 다시 쓸 수도 있다며 잘 버리지 못하는 것도, 무언가를 버릴 때는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인사하는 것도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는 나의 습성에서 나온다.


신발장 속에 돌돌 말려 있던 백화점 장바구니가 눈에 띄었다. 강아지 우비를 만들려던 때였는데 마침 방수 재질인 것도 안성맞춤이었다. '이걸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장바구니를 챙겨서 수업 시간에 가지고 갔다. 아직은 원하는 원단으로 뭔가를 만들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니 남는 원단으로 먼저 만들어 보자고 선생님께서는 제안하셨다. 장바구니에 수업 자료들을 넣고 다니는 동안에 그것은 가볍고 실용적이고 비를 맞아도 젖지 않는 가방의 역할을 충실히 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분이 장바구니를 유심히 보더니 내리기 직전에 하시는 말,


"문구가 참 좋네요."


가방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Growth happens in the pause'

(성장은 멈춤에서 일어난다)


그분이 어떻게 이 문구를 보셨는지 신기했고, 또 그것을 입 밖으로 전한 것도 그랬다. 내게 잊지 말라는 신호를 주는 것 같았다. 이 문구는 이 가방을 재활용하고 싶었던 이유였다. 그렇다. 성장은 가끔 나를 다시 돌아보는 그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일어난다.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면 그 사실을 잘 잊는다.


2025년이 시작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중반을 향해 간다. 매일 감사 일기를 쓰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와중에도 '그동안 한 게 뭘까?'라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번아웃이 왔다. 그럴 때는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하다. 누구도 내게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내게 멈추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에너지를 충전하면 그 이후엔 더 잘 달릴 수 있다. '빨리 가고자 하면 오래 걸릴 것이고 천천히 가고자 하면 끝까지 갈 수 있다.' 오늘도 마음이 급해지려 할 때마다 속으로 되뇐다. 멈춤은 더 이상 내게 정지의 의미가 아니라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넓은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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