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행복한 상태에 대하여
얼마 전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뭐라고 정의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전에도 사랑의 정의에 대해 자주 생각해 왔던 터라 답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요즘처럼 분명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나의 대답은 이랬다. '사랑은 모든 번거로운 것을 번거롭지 않게 만드는 것'
미싱으로 뭔가를 만들고 나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의감에 빠진다. 수작업으로 세 시간은 족히 걸리는 물건을 다이소에서는 천 원에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나 자신조차 만족스러울 정도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도 공장에서 뚝딱 만들어내는 대량 생산품의 깔끔한 봉제를 따라가기 힘들다. 핸드메이드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직접 만든 물건에 시간의 가치까지 더해 판매하고, 그걸 알지 못하는 사람은 비싸다는 말부터 꺼내는 이유다.
지난 5월 초의 황금연휴에 나는 삼일 동안, 하루에 세 시간 이상을 강아지 신발 만들기에 투자했다. 그리고 완전히 방전되어 버렸다. 생각하던 디자인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음에, 내 실력이 아직도 제자리인 것 같음에, 기다렸던 시간을 사랑하는 이와 충분히 못하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연휴의 남은 날들에는 미싱기를 보지도 않고 보냈다.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쏟고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결과보다 과정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도 없거니와 끝까지 간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했다. 미싱을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 장치들을 마련했지만 정작 이 모든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하나도 계속할 생각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미싱을 계속하면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나에게는 남편과 뚱자, 그리고 가족이라는 사랑하는 존재가 있고,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 과정이 조금 괴롭더라도 쉽사리 멈추지 않겠다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고 나는 미싱기 앞에 앉는다. 성공하지 못했던 디자인을 들여다보며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감정적으로 행복해야 동기가 부여되고 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 마음 지구력 중에서
내게 감정적으로 행복함을 주는 상태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인가 보다.
세상에 이미 만들어진 물건은 많지만,
내가 널 위해 만들어낸 물건은 아직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