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두는 것만으로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믿고 싶지 않은 것은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낙관주의의 이면에는 확증 편향이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지',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나를 긍정적인 사람이라 평하며 곁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들 하지만 나는 어딘지 함정에 빠진 것만 같았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그때 그게 최선이었니?
결혼할 때 집을 사지 않은 것
SK하이닉스 주식을 사지 않은 것
선한 목표가 있다면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믿은 것
분명 잘못된 판단이었음에도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는 모습에 갑자기 댕!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고 말하던 나 아니었나.
확증 편향이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에서 나온다.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처럼 성장에 목말라 있는 사람,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앞으로 있을, 더 나은 선택을 위한 방법이다.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는 방법>
귀를 기울인다.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를 구분하자. 진심으로 조언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례로 나는 올해 6월에 대만에서 진행하는 펫쇼에 나갈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강아지 신발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6월이라는 시기를 데드라인으로 잡으면 어떻게든 만들겠지 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난날의 나는 시기를 잡고 뭔가를 하면 어떻게든 만들어 냈고 그것이 실패든 아니든 간에 완성했다는 것에 만족감이 컸다.
남편은 또 한 번 불도저처럼 목표만 보는 나를 보며 우려가 된다는 듯 말했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신발을 만드는 것이지, 어떻게든 세상에 내놓는 것이 아니야."
나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완벽한 강아지 신발을 만드는 것이다. 종국에는 그것으로 하여금 더 많은 반려 동물의 삶을 편하게 해 주고 싶은 것이지, 당장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나 행동을 경계하게 되었다.
귀가 작은 사람은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한다. 남편과 나는 둘 다 귀가 작다. 종종 서로의 귀를 만지작거리면서 "와.. 진짜 남의 말을 안 듣겠다" 며 놀려대곤 한다. 동시에 다짐한다. 나를 위한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자고. 무엇이 그것이고 아닌지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 내가 원하는 말만 들으려 하지 말자. 옳다고 믿는 것에 갇혀 정말 옳은 것이 무엇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가 되지 말자.
근거 있는 긍정은 나를 건강하게 한다. 근거가 있으려면 노오오오력을 해야 한다.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집에 해바라기 그림을 걸어두는 것만으로는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라고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그래도 걸어는 둬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