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May 14. 2024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운세입니다.

나는 카카오 스토리의 '오늘의 운세'를 종종 들여다보는데 이유는 웬만하면 좋은 말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늘 당신의 매력과 능력이 돋보이는 날이 될 거예요." 

"계획했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운세입니다." 등등


좋은 말은 좋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좋은 생각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에 

카카오 스토리 오늘의 운세를 자주 들여다보는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말만 해 준다면 신빙성이 없다. 

가끔은 '주변 사람의 조언을 따르라' 든지

'집에서 푹 쉬라'는 현실적인 운세도 나온다.

그것이 상당히 높은 확률로 나의 상황과 맞아떨어져 

다른 어떤 것보다 꾸준히 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의 운세는

"주변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할 거예요."

라는 생소한 운세였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 힘들 거라는 건데.. 그럴 없어! 

나는 무조건 좋은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낼 거야.'

라고 다짐하며 남편 출근 후에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오전에 예정되어 있던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약속을 잊어버리고 당일에 불참을 한 것이다.

시간 약속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당일 참석을 누구보다 싫어하는 내가! 

당일, 그것도 바로 임박한 시간에 약속 파투라니..!


스스로 충격을 받아서 늦게라도 참석하려고 했지만

이미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모임이 끝났을 시각이었고

죄송하다고 전하고 회의 결과는 나중에 듣기로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오히려 잘 됐어. 그동안 너무 열심히 참석했으니까 오늘은 쉬라는 계시야."

라며 나를 다독이고는 출근을 했는데 오늘따라 일이 너무 바쁘고, 생각지 못했던 문의밀려왔다.

조급한 마음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어떤 것부터 해야 하지?' 침착하기가 어려웠다. 보통의 나는 조급한 상황에서 더 침착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혼자 이 말을 되뇌곤 했다.


'일이나 상황에 압도당하지 말자' 


자영업자인 나는 일이 많고 바쁘면 두 팔 벌려 기뻐해야 하는데도 그것과는 별개로 기쁜 마음만 들지는 않는다. 마음이 급해지고 긴장감이 더해져 심장이 터질 같은 압박을 느낀다. 일하면서 나오는 긴장은 나에게 도파민을 주기도 하지만,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스트레스가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전하는 주문이 필요하다. 이 주문을 오늘 다섯 번은 되뇌었을까, 나의 능력 최대치까지 끌어올려서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되어 들어왔다.


마침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을 내일모레 독서 모임에서 다루는데, 나에게도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밖에서 얻는 스트레스를 집까지 들고 오지 말자'가 평소 나의 생각이었기에 속세에서 얻은 이 스트레스는 화장실에 들어간 뒤에야 한숨으로 토해낼 수 있었다. 남편이 로즈데이라며 사둔 예쁜 꽃들이 식탁에 있었고 저녁으로는 껍데기가 맛있는 임연수 구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오늘 하루의 무게가 뒤에 업혀 있었다. 그래도 차려준 저녁이라 고맙게 먹고서 밥이 부족해 컵라면 봉투를 뜯는데, 봉투가 옆으로 팡! 뜯어져 가루가 사방에 퍼졌다. 오늘 하루의 스트레스가 같이 팡! 터지는 느낌이 들면서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졌다. 문득 ''오늘 하루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한 운세입니다'가 생각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나: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겠어?

남편: "응? 갑자기?

나: "응, 나 오늘 그게 필요한 운세래."

남편: "내가 하면 너무 딱딱하게 들릴 텐데..."

나: "그래도 해 봐, 한 번 해 주라"

남편: "음... 그렇다면

.

.

.

.

.

수고하셨습니다."


나: "그게 뭐야,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남편: "갑자기 하라니까 그렇지, 다시 해 볼게~ 수고했어요오옹"

나:......"따뜻한 한마디가 어려운 거구나.. 그러니까 드라마 제목으로도 나왔겠지."

남편: "윤영이는 있어? 갑자기 하라면 어려운 거야" 

나: "나는 할 수 있지, 오늘 로즈데이라고 예쁘게 신문지에 꽃을 싸줘서 고마워. 내가 좋아하는 생선 반찬 해 줘서 고마워, 내가 라면 가루 사방에 쏟았는데 아무 말도 안 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보니 외려 내가 위안을 받는 기분이었다. 입으로 뱉고 나니 오늘 하루 나는 고마운 게 많았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에 약속을 취소했어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자영업자가 매일 바쁠 수 있으니 행복한 거였다. 결국 내 마음에 일어난 파도는 내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내가 나에게도 해 줄 수 있는 거였다.





남편이 느낌 낸다며 신문지에 예쁘게 말아둔 꽃 


빨간 꽃 노란 꽃 


동생이 절에 가서 붙인 초 


필요해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아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의 특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