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May 19. 2024

사람이 사람에게 친절하기가 그리 어려울까

우리는 모두 매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소중한 주말의 하루를 빼서 노래 프로그램 예심을 보러 갔다. 300명 정도 모인 가운데 1차 예심을 통과하고, 2차 예심을 보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1차는 무반주로 노래를 했고, 2차에서는 노래방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했다. 그 과정에서 (기계를 다루는 분의 실수였는지, 혹은 의사소통의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심사위원 중에 한 분이 노래방 기계를 다루는 분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다. 심사위원은 방송국 관계자였고 뭐 절대 음감을 가진 분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지금 그거 G키죠?" "자꾸 마음대로 키를 바꾸지 말고 원키로 하세요"라는 등의 지시를 했다. 처음에는 그분이 멋있어 보였다. '와~ 저 키를 바로 안다고?' 그러니까 저 자리까지 갔겠지'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이 부끄럽게 만든 것은 그분의 말투였다. 물론 심사위원의 입장에서도 빠른 진행을 위해 직접적으로, 크게 말하는 것이 편했겠지만, 사람이 50명 정도 되는 공간에서 꼭 그렇게까지 명령조로 하대하듯이 말해야 했을까? 그 자리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기계를 다루시는 분은 이어지는 면박에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묵묵히 일을 이어나갔지만, 아주 잠깐의 순간에 그분에게서 새어 나오는 한숨을 나는 보았다.



그 방송국 관계자뿐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같이 심사를 보던 한 개그맨은 2차 예심에 붙은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실력이 없으니 여기 앉아 있는 거예요. 실력이 있으면 히든 싱어나, 싱어게인에 나왔겠지 여기 있겠어요?" "주변에 동원할 만한 백댄서들 없어요? 웃겨야 해요, 이 무대에선 노래보다 웃겨야 살아남는다고!" 나는 꿈틀거리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게 가스라이팅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붙고 싶다는 일말의 마음일까, 도전 앞에서 그냥 도망쳐버리는 것이 무서웠던 걸까, 차례가 올 때까지 불편함을 억누르고 앉아 있다가 결국 2차 예심을 보았다.





친절이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매일 살아가는 길 위에서 힘든 싸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2차 예심 때 노래를 부르기 전에 어떤 멘트라도 하길 원했던 심사위원에게 나는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수고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우리 모두 위축되고 긴장이 되는 상황에서도 나만큼은 나의 팬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이 노래를 선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기서 감사하다는 말은 노래방 기계를 다루는 분에게 하는 말이었다.



나는 2차에서 떨어졌고 노래를 마친 후에는 그 장소를 뜰 수 있어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에는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글이 어떻게든, 누구에게든 전해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쓴다. 당신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면, 본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운동과 글쓰기와 섹스의 공통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