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어떤 직무를 맡는 도중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증상. 정신적 탈진, 한자로는 소진(燒盡)이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애정을 가지고 업데이트하던 음악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것은 한 달 전이고, 주말에는 그저 쉬고 싶어서 강아지와 함께 하는 영상만 조금씩 찍어 편집한다. 한 달에 두세 번 하는 독서 모임에서 누군가 모임 후기를 남기지 않으면 내가 쓰곤 했는데, 이번주에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해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을 좋아한다. 뭘 해야겠다고 아등바등하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으면서 그 마음을 외면하고 성급하게 결정했을 때는 대체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번아웃이 자주 오는 편은 아니니, '이번 달에는 내가 써야 할 에너지를 매우 빨리 소진했나 보다. 조금 쉬어가자...' 하는 나를 괴롭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견디지 못할까?
뭔가 찝찝한 기분이 있으니 잠을 자도 푹 자지 못하고, 분명 잘 쉬었는데도 주말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일에서는 지난달에 비해 80% 이상의성과를 올렸는데도, 성취감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다음 달에 이 정도를 달성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다가올 하락을 내심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속에서 두려움을 계속 생각하는 것은 그것을 불러오는 거라는데, 나는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이런 마음의 파도 속에서 그나마 내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루틴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씻고, 스트레칭을 하는 남편을 위해서 나는 사과를 깎는다. 그리고 남편이 틀어 놓은 자기 계발 영상을 들으면서 짧은 메모를 쓴다. 이 메모는 남편이 갖고 가는 두유에 붙여 준다. 출근하는 남편을 꼬옥 안아준 다음, 나는 1시간 정도 더 잠을 자고 일어난다. 일어나서 들여다본 핸드폰 속에는 남편이 고맙다며 보내 준 나의 쪽지가 있다. 이런 루틴이 지속된 것이 이제 5개월,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작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지키며 사는 우리가 새삼 고맙다. 일상의 루틴은 나를 번아웃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작은 장치다.
오늘은 사무실에서 키우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수요일이기에 출근을 하면 나는 곧장 물을 받아 반려식물들에게 줄 것이다. 출근 후에 생각을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하는 일들은 점점 늘어나서 한 개에서 다섯 개 가 되었다. 꼭 해야 할 것들을 해치우고 나면 곧 퇴근 시간이 된다. 너무나 똑같아서 지루하기도 한 루틴들, 나를 번아웃으로 몰고 가기도, 혹은 빠져나오게도 하는 이런 루틴을 잘 융통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매일 해야 할 것들 때문에 지치고 해야 할 것들 덕분에 산다. 모든 일에 같은 정도의 에너지를 쏟을 수 없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지금의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한 방법일 터다. 루틴을 지킨 후의 시간에는 내 마음에서 진짜로 원하는 것들을, 아주 즉흥적으로 해 볼 예정이다. 예를 들면 자주 가는 빵집에서 처음 보는 빵을 고르는 것 같은 일.
출근 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연재일이라며 침대에서 꺼내 준 브런치 시스템에 감사하며